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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즈 Oct 04. 2024

나도 스토너이고 싶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차분해 보이는 내 외모나 말투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을 좋아할 같다는 얘길 듣곤 한다. 그러나 보기와는 달리 나는 독서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요즘은 더더욱, 아무리 주변에 책을 널브러 놓아도 그 가운데 언제나 유튜브 포로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지적 허영심은 아직 독서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나의 알량한 지적 허영심을 근근이 채우고 있다.


영암에서 근무할 때 비슷한 성향의 실장님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었었다. 한번 만나면 늦은 시간까지 얘기가 이 없었다. 그런데 대부분 업무에 관한 얘기였고 자주 반복되니 분위기 전환 필요했다. 내가 독서모임을 제안했고, 다들 못 이기는 척 동의했으며 첫 번째 책으로 멤버 중 한 명이 추천한 <스토너> 읽기로 했다.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대박!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스토너>작가 존 윌리엄스의 1965년작으로 출간당시 문단의 평가는 좋았지만 독자들의 관심 끌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50년이 흐른 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길래 50년 전 소설이 지금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


1910년 미국 미주리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궁핍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대학 2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접한 문학의 매력에 빠지고, 이런 스토너를 알아교수님 도움으로 박사과정을 거쳐 모교의 영문학과 교수가 된다. 그리고 첫눈에 반한 상류층 여인 이디스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 이디스는 남편사랑을 거부하며 집안일에만 몰두하는 이해하기 힘든 여자였다. 직장생활 또한 학내 유망한 한 교수와 생긴 갈등으로 소외되고 고립된다. 성실하고 진실했지만 행복한 가정도 사회적 성공도 이루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다 간 한 남자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본 이야기다.


타고난 스토너의 근면성실함은 대학시절 빛을 발한다. 스토너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새벽부터 일어나 농장의 온갖 허드레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대학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특히 문학을 접한 이후로 운명에 이끌리 듯 문학 공부에 빠져든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P.31~32>

오랫동안 스토너를 봐온 영문학과 아처 슬론교수 처음엔 겨우 낙제를 면할 실력에서 이젠 학부생 누구보다도 우수한 실력을 갖춘 스토너에게 가 천상 교육자이고 영문학을 사랑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스토너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며 스토너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다. 아처 슬론 교수가 없었다면 어쩔 뻔!


교수가 된 후 스토너는 자신이 느낀 영문학에 대한 감정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여러 해 강의를 거듭해도 그가 가장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감정들이 강의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갈증을 느낀다.

"하지만 이디스가 세인트루이스에 가 있는 동안 강의를 하면서 그는 강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무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과 눈앞의 학생들까지 잊어버리는 경험을 종종 했다. 완전히 열정에 사로잡혀서 대개 강의의 지침서로 삼던 강의메모마저 무시해 버린 채 말을 더듬기도 하고 손짓을 동원하기도 했다."

 <P.159> 

아내 이디스의 부재가 스토너에게 해방감을 주었던 걸까? 스토너는 그동안 생각처럼 되지 않던 강의가 자연스럽고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만족스러운 강의를 하게 된다.  강의 후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고  학생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높아지면서 스토너는 교수로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스토너의 전성기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한 대학원생의 진로 문제로 빚어진 로맥스 교수와의 갈등으로 후에 학과장이 된 로맥스로부터 스토너는 오랫동안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그로 인해 한창 타올랐던 열정은 사그라들고 교수로서의 입지도 좁아지며 고립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스토너에게 뜻밖의 사랑이 찾아온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스토너를 읽고 난 후 영암 독서모임 4명의 멤버가 모였다. 독서모임의 묘미는 같은 책, 다른 느낌이지 않는가? 그때도 역시 각기 다른 감동포인트로 각자가 가진 경험의 조각들 다름을 증명했다. 그러나 멤버 모두 격하게 공감했던 지점이 있었다. 외롭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스토너에게 중년이 넘은 나이에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멤버 모두 유부녀임에도 '사막 같은 스토너의 인생에 이런 사랑(바람)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고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마음만은 여전히 소녀였던 중년의 여인들이었다.


원작자 존 윌리엄스는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P.394~395>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업으로 하면서 애정하고 성실했던 스토너가 부럽고 멋있었다. 보통은 그저 먹고살기 위에 적당한 직업을 갖고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보람도 느끼지만 돈만 아니면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나도 정말 이놈의 대출금만 아니면, 애들 학원비만 아니면 사표도 팩스로 보내버리뒤도 안 돌아보겠단 때가 있었다.


얼마 전 정재찬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인 워라밸이라는 말이 가진 오해를 밝혀주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일이 삶과 별개 즉, 일은 삶이 아니라는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라밸은 인생의 무게중심을 일에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일 뿐 우리는 결코 일이 삶에 커다란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일이라는  개인에겐 생계 수단이지만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에선 서로가 서로의 이마를 짚어주는 고귀한 일이니 각자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분을 다할 때 우린 스스로 존엄해진다는 시와 곁들여진 멋진 흐름의 강의였다.


최근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져 가던 내게 단순한 밥벌이일 수 없는 내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고 '직업의 직분은 뭘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스토너의 삶이 나의 부러움을 살만큼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성실과 근면의 끝판왕이면서 지적이고 가정적이기까지 한 스토너는 너무나 매력적인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실제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주변 인물들과 작가의 경험인 듯 디테일한 사건 전개가 를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때론 설레었고 때론 좌절했으며 결국 체념하고 마지막 순간엔 무지를 깨달은 스토너의 인생을 나도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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