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NNIE Jan 16. 2022

낯선 청년에게 받은 우산

일면식 없는 타인의 선의

고등학교 때 2학년 때 쯤의 일이다. 요즘에야 학생 인권이다 뭐다 학생들의 자유가 많은 시대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꽤나 엄격한 규율에 맞추어 학교생활을 해야 했었다.

아침에 한 번 학교에 오면 학교 밖을 나서기는 거의 불가능 했고 조퇴 한 번 하려면 친구의 비비크림을 입술에 얇게 찍어 바르고 최대한 풀린 눈으로 나의 아픔을 열정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학생주임 선생님과 선도부가 학교 정,후문을 막고서서 혹시 모를 학생들의 일탈을 감시했고, 발각되는 날에는 호되게 혼이 나곤 (때로는 맞기도)했었다. 그래도 점심 시간엔 병원이나 볼 일을 봐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외출 제도'를 운영하였고, 담임선생님께 사유를 말한 뒤 외출증을 끊어 밖을 나설 수 있었다. 가끔 동아리나 학생회 선배가 밥을 사주거나 할 때 종종 외출증을 끊어서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 날도 친구와 은행인가, 병원에 들러야 하는 날이어서 외출증을 끊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번화가와 여학생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점심시간에 잠깐이지만  무언가를 즐기기에 좋았었다. 그 날은 날씨도 좋고 밖을 나간다는 기쁨에 발걸음은 더 가벼웠고, 친구와 볼 일을 보고 오랜만에 급식 대신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그래봤자 돈가스 아니면 떡볶이였을 것이다.)


신나게 놀다보니 슬슬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 아쉬운 마음을 안고 건물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후두두둑 소리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내렸다. 분명 날씨가 좋고 비온다는 이야기도 없어서 우산도 챙기지 않았기에 친구와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 두려웠고 비는 어찌어찌 맞는다고 쳐도 점심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교복이 온통 젖어버린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었다.


이거 쓰세요. 전 두 개를 가져와서요.


그때 내리는 비를 보고 있던 한 청년이 우리에게 말을 걸며 우산을 건네고 쿨하게 다른 우산을 펴고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우리는 고맙다고 할 틈도 없이 가버린 그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진짜 다행이야' 라고 말하고는 학교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청년의 미담을 무용담처럼 전해줬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르기에 그 우산은 돌려주지 못하고 둘 중 누군가가 가졌던 것 같다.


정확히 15년이 지난 이야기인데도 아직도 그 장소의 분위기와 그 청년의 따스한 말투가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선의가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마음에 남다니. 순수했던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우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때의 초조함이 만든 산물일까.

그도 아니라면 30대에 되어 팍팍한 삶에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지도 받지도 못하는 현실에는 없는 예쁜 추억이기 때문일까.


가끔 그 때 우산을 준 청년을 떠올린다. 타인을 미워하지 않으면 다행인 지금을 살면서도 가끔 나도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한다. 내가 베푼 별 것 아닌 작은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출근길에 한 줄기 웃음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