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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Feb 03. 2022

그 시절 무엇이 나를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영화에서 보던 미국 하이틴의 전형이었다.


동아리 문화가 굉장히 발달된 고등학교였는데, 신입생이 되면 동아리에 들어가기위해 그리고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모로 전교생이 고군분투했다.


소위 잘나가는 동아리부터 공부만 하는 동아리도 있었고, 각종 끼로 뭉친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도 있었다. 당연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이 들어가는 동아리도 있었다. 아마 기억에는 동아리를 하나도 안하는 학생은 정말 소수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반기가 되면 학교 축제가 열리는데 각 동아리 별로 교실을 전시관 삼아서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전시를 열거나 체험을 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과학 관련 동아리는 칸쵸를 먹으면 코에서 연기가 나오는 '용가리 칸쵸' 체험, 영화 동아리는 '귀신의 집', 미술 동아리는 그동안의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


축제에서 하이라이트는 2부인 공연에 있었다. 학교에서는 시에서 운영하는 문예회관까지 빌려 꽤 큰 규모로 거의 전교생을 모아두고 행사를 했다. 장기자랑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연극동아리나 개그동아리, 악기 동아리는 거기서 공연을 했다. 마지막에는 선생님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올해의 동아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동아리 활동이 아닌 학생회 활동을 선택했다. 학생회도 들어가기 위해서는 면접을 봤어야 했는데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곳이기 때문에 엄청난 압박면접을 치루고나서야 합격할 수 있었다. 학생회에서 나는 동아리부 차장을 맡았었는데 이 축제의 1부를 담당하는 일 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동아리 활동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이었다. 예산의 회계나 영수증 처리를 하기도 하고 마치 코엑스의 전시에서 어디에 전시하는 게 좋을지 같은 행사 레이아웃을 기획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했다.


남들 다하는 동아리 체험도 못하는 것이 조금은 억울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판을 열어주고 지원해주는 일이 나에겐 참 보람되고 좋았던 것 같다.


학생회를 하면서는 정말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했었다. 고3 선배들 수능 전에 수능이벤트도 하고, 수능 날 전날에는 팀을 나눠 각 고사장 앞에서 밤까지 새가며 좋은 응원자리를 선점하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그렇게 학생회 활동으로 마치고 2학년에는 조금 변화가 있었다. 친한 친구가 학생회장에 출마했고 나는 그 선거캠프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었는데 친구가 당선에 실패하자 나는 선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동아리부 부장' 자리를 거절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전부인 때라 의리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이하게도 나는 그 이후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뮤지컬 동아리를 만들게되었다. 나는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닌지라 뮤지컬 공연 기획을 맡았고 결혼식 날 전 남자친구가 결혼하는 신부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지라 기획을 하면서 신부 어머니 역할도 같이 했는데, 방학 내내 춤과 노래연습을 했다. 그 당시에는 연습할 공간을 빌릴 생각도 못해서 학교 강당이나 학교 옆 소공원에서 노래를 틀고 야외에서 춤과 노래연습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같이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다.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그 때 췄던 박진영의 허니 춤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따라할 수 있을 지경이다.


열심히 연습했던 덕택인지, 주인공을 맡은 친구들의 '미친' 가창력 덕택인지 우리 동아리는 신설 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강자였던 여러 동아리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었다. 그때 친구들과 엉엉 울면서 정말로 뛰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생각해도 그 순간은 짜릿했다.


이제와서야 생각해보면 학생회 활동을 한다고해서 별도로 돈을 받거나 무언가 좋은게 있던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열정으로 그렇게 열심히 했던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동아리 활동도 그렇다. 친구들과 무언가 해보고 싶단 열정에 동아리를 만들고 죽어라 연습을 했다.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냥 1등을 하면 그 뿌듯함이 끝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 세상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좋은 일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나의 고등학교 시절 처럼 '단합' '열정' '보람' 이런 희망적이고도 비현실적인 단어들이 내 인생을 점령했던 그 때가 더 그립다. 그러면서 동시에 요즘은 누가 시키지 않으면,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내 모습이 약간은 실망스럽다.


보통 사람들은 어릴 때가 철이 없다고 하지만 오히려 너무 철이 들어버려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작은 일에도 계산이 앞서는 지금이 무언가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기분이 들어 그 때 보다 더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웅장해지던 어린시절이 참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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