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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Feb 13. 2022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나만의 네모난 상자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 먼저 그 친구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고, 새해 마다 항상 직접 만든 연하장을 보내는 그런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친구를 단지 ‘세심한 친구’ 라고만 생각했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는 “이거 볼래?” 하며 낡은 파일을 건넸다. 그 파일에는 친구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반 친구에게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부터 매 년 찍은 스티커 사진들, 그리고 나와 주고받았던 편지 등으로 가득했다. 그 곳엔 친구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꽤 많은 추억들이 있었지만 정리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책꽂이 여기저기에 꼽아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사를 다니면서 쓰레기장으로 간 그 것들을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는 단순히 ‘세심한 친구’ 가 아니었다. 소중했던 것을 ‘잊지 않는’ 친구였다.


요즘들어 과거를 기억하려는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예전에 유명했던 아이돌이 엄마가 된 후 경력단절이 되었지만 재기하는 모습이라던지, 옛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콘서트를 여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인기의 이유는 잊혀져가는 것들을 꺼내보는 시간을 만들어 줬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잊었던 내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너를 사랑해’ 악보를 사서 피아노 연습을 했던 기억, 핑클 춤을 장기자랑에서 췄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친구처럼 꺼내 볼 무언가가 없다는 게 참 서운했다. ‘나도 다 보관해 놓을 걸…’하는 늦은 후회가 들었다. 지금이야 학창시절은 십 여년정도 전이니 생각하면 생각해 낼 수 있겠지만 내가 중년이 되었을 땐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없다면 추억을 떠올리기도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잊으며 산다. 그 때는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던 소중한 것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졌다. 하지만 그러다가 추억을 떠올릴 무언가를 발견하면 또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에세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의 머리말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낡고 늙어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추억하는 것은 현재의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소중한 추억들을 어딘가에 담아두어 그리울 때 마다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친구의 낡은 파일을 본 뒤에 ‘네모난 상자’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곤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가까운 미래에라도 추억을 쉽게 열어볼 수 있게 말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지만 그 세상 속에서 나만의 ‘네모난 상자’ 만은 천천히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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