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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 Jul 28. 2023

나의 무쓸모를 깨닫게 된다는 건 - 2편

정책학과 출신 찐문과생, 삼성 개발자되다.


 * 우연히 들어가본 노션에, 한창 자바 기초를 공부하던 2022년 6월 22일의 필자가 ‘나의 무쓸모를 깨닫는다는 것’이라는 슬픈 제목으로 글을 적어놓은 것을 발견해 그 이후부터의  행적을 정리할 겸 해서 글을 적고 업로드합니다. ‘기억보단 기록을’이라는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 제목처럼, 그 시절 어느 순간 문득 들었거나, 긴 시간 씹고 씹었던 감정을 내 공간에 남겨두고 싶어 쓰던 미완이던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아직도 쓸모가 많진 않지만, 처음 본인의 무쓸모를 직시했던 그 순간의 막막했던 감정을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한 기록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학생회를 할 때 가장 해보고 싶었지만 시도하지 못 해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사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동창회 사이트나 어플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 당시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동창회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 수험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과의 특성상 동문 간 교류가 활발하지 못함

2) 코로나 때문에 학과 구성원의 원자화가 가속화되고 있었음

3) 학생회나 행정실의 제도나 사업을 뒷받침하는 플랫폼이 중구난방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음



그래서 제작을 시도해보려고 자바를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3개월 만에 자바를 배워서 그런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여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바쁜 시기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바 책(지금도 그 책이 있는데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을 집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순수하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나를 처음으로 발견했던 때이기도 했기에 조금 더 공부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길로 <자바의 정석>을 구매해 2022년 4월부터 혼자 부대 내 사지방에서 자바와 백엔드 공부를 시작했다.  



    호기롭게 개발 공부를 시작했지만 파면 팔수록 어려운 것이 쏟아지는 탓에 고생을 좀 했다. 당번병(행정병이라 쓰고 당번병이라 읽음)의 보직 특성상 일과가 다른 병사들보다 일찍 시작되고 늦게 끝나 공부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힘들었고, 사지방에서 하모니카 OS로 자바와 스프링 프레임워크를 공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금 보면 어떻게 했나 싶지만, 그땐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힘이 났다.  



    처음 만들었던 서비스는 ‘DOOGI’라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련한 것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던 때, 인원 수 제한과 그 기준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만든, 인원 수와 백신접종자 수 등의 기본정보만 입력하면 모임 가능 여부를 바로 보여주는 보여주는 서비스였는데(사회적 거리’두기’의 그 DOOGI가 맞다), 프론트엔드 프레임워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이어서 Thymeleaf와 바닐라 JS로 기능을 하나하나 구현하는 데에 정말 애를 많이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일상회복이 시작되어서 배포하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바쁜 일과 중 짬을 내어 개발 공부를 계속했고, 내가 쓰고 싶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험 삼아 만들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 생활하던 중대의 옆 생활관에 해군 SW 개발병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가 묻기도 했다. 나이먹은 병사가 군대에서 코딩 공부를 하는게 신기+기특했던지 그 병사들은 친절하게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실제로 현업에서 일을 하다온 친구들은 앞으로 어떤 걸 더 공부해야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반년의 시간이 흘러 전역을 하고, 2022년 9월 다시 누군가에게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돌아가야했다. 입대 전 느낀 뼈아픈 감정을 다시 느끼기 싫어 하루하루 열심히 보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어하는 성미급한 나에게 개발직군은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나 수행한 작업이 잘 보인다는 점에서 잘맞았고, 그 과정과 결과 모두를 기록하기에도 참 좋았다. 내가 맞닥뜨린 문제와 관련한 고민은 글로 적었고, 해결한 결과물은 코드로 남겼다.



    늦게 배운 개발이 참 재밌었지만, 모든 것이 계산대로 움직이는 컴퓨터 밖의 세상도 내게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떠올리고, 글을 쓰고, 창의적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개발과는 사뭇 다르지만 완전히 격리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문이과적 능력을 모두 함양하고 있다라고 말하기엔 거창한 것 같고, 잡스러운 스킬을 모두 갖추고 있다라고 말하기엔 섭섭한데, 그 사이의 수식어로 불리는 어딘가에 위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한 채용 공고가 있을까 싶어 찾아보던 때에, 네이버 클라우드의 테크니컬 라이터(TW) 직무 인턴과 삼성SDS의 SCSA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TW가 수행하는 업무의 기술문서 작성 + 카피라이팅 + 일본어 번역이라는 삼박자는 내 흥미와 너무나도 잘 맞았고, 비공대 출신의 개발자를 양성하는 삼성의 SCSA(Samsung Convergence Software Academy) 역시 내가 가진 진로 고민을 해결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개발자를 키워내고자하는 전형의 취지에 내가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내가 가진 개발 이외의 역량들을 반복해 강조/어필했다. 살면서 처음 써본 자소서였지만 내가 쓴 자소서가 참 좋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 쓰고 싶은 대로 썼다. TW 직무든, SCSA 전형이든 내가 담당자라면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고 끝나는 개성없는 자소서라면 읽고 싶지도 않을 것 같았다. 자소서를 첨삭해준 친구가 ‘기업 지원용 자소서를 쓸 줄 모른다’라는 평가를 해주었는데, 나는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지원한 곳은, 그런 걸 원하는 곳이니까.




삼성 SDS SCSA 자소서 中


네이버 클라우드 TW 직무 자소서 中


 

    결국 두 곳 모두 서류 합격했지만 네이버 클라우드는 GSAT 일정과 겹쳐 면접에 불참했고, SCSA 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이후 6개월 간 SCSA 교육을 받고 현재는 입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좀 지친 상태라 요즘은 그냥 쉬거나(80%),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하거나(10%), 운동을 하면서(10%) 보내고 있다.  


교육 중 올린 스토리.. 밤 10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취업이 확정된 지금도 나의 쓸모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쓸만해 보임'을 인정받아 채용되었고, 교육까지 무사히 수료했으니 이젠 '실제로 쓸만함'을 증명할 차례라는 생각에 또 다른,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고민은 손에서 키보드를 놓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을 숙제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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