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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 Aug 01. 2023

일본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의 녹색불이 깜빡인다면 - 1편

한국과 일본의 신호기 신호 체계는 어떻게 다를까


 매년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여름 참 덥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는데 그런 날들은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이젠 밖에 나오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덥고 쨍쨍하네요. 저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이렇게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카페로 피서를 가거나 에어컨 밑에서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 이외에 다른 행동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정말 드물게 친구를 만날 때에도 하나같이 서로를 보며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언제나 같습니다.


"날씨가 왜이래"



 제가 경험한 최고의 더위는 한국, 그 중 가장 덥다는 제 고향 대프리카(대구)도 아닌 일본이었습니다. 17-18년도를 일본 나고야에서 보냈는데 그곳의 여름이 저에겐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안좋은 의미로요). 37-38도에 육박하는 높은 기온과 근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닷 공기가 합쳐진 그곳의 여름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게 아니라 ‘줄줄’ 흐를 수도 있다는 걸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더위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제가 여름에 가장 많이 걷고 외출했던 때는 일본에 있던 시기였습니다. 6월초부터 9월말까지 쭉 더운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에 덥다는 이유로 칩거하게 되면 1년의 1/3을 기숙사에서만 보내야하기도 하고, 애써 떠난 유학길인데 방 안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는 모종의 열정에 열심히도 걸어다녔습니다. 한국에서는 걸을 수 없는 길, 볼 수 없는 풍경이 그렇게도 새롭고 재밌을 수가 없더라구요.



나고야 어느 가게 버튼 가게. 지금은 폐업했다네요.



 그렇게 많이 걸어다녀도 언제 어디서든 만나고, 보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에 있는 신호등 같은 것들이요.



보행자, 자전거 전용 신호기



 얼핏보면 한국에 있는 것과 비슷해보여도, 여러번 마주치다보면 어느새 다른 점을 알아채게 됩니다. 관성처럼 똑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제 걸음이 여기선 어색하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지금이야 한국의 보행자 신호등 옆이나 아래에 남은 보행신호시간을 알려주는 숫자판이나 화살표들이 존재하지만, 그런 표시 없이 언제 빨간불이 될 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녹색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행자 신호등의 녹색불 잔여시간을 뜻하는 역삼각형 표시가 1998년에, 아라비아 숫자 표시는 2004년에 도입되었습니다. 지금은 두가지를 혼용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적색불에서 녹색불로 보행자 신호등이 바뀌면, 짧은 몇 초 동안의 녹색 등화(깜빡임없는) 이후에는 녹색 등화 점멸이 이어집니다. 점멸로 들어서면 녹색불의 잔여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구요. 또한 녹색 등화의 점멸이 단순 등화보다 몇배나 길게 지속되기 때문에, (잔여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라면) 점멸 간 횡단은 한국인들에게 지극히 당연합니다(후술하겠지만 제도적으로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녹색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일본에서는 신호등 녹색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적색불로 변하는 데에 매우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깜빡이는 녹색불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한국와 일본의 보행자 신호체계는 어떻게 다르길래 이런 차이가 생겨난 걸까요?




도로교통법상 녹색 등화 점멸 신호의 뜻



도로교통법시행규칙 [별표 2]


사실, 한국와 일본의 제도가 규정하는 녹색 등화/점멸의 의미는 비슷합니다. 한국의 경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서 신호기 신호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별표 2]를 보면 ‘녹색등화의 점멸’은 ‘보행자는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아니되고, 횡단하고 있는 보행자는 신속하게 횡단을 완료하거나 그 횡단을 중지하고 보도로 돌아올 것’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관련 내용을 ‘도로교통법 시행령(道路交通法施行令)’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령 제2조 ‘신호의 의미’의 ‘人の形の記号を有する青色の灯火の点滅(사람 형상을 가진 청색 등화의 점멸)’을 1) 보행자 등은 도로의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아니 되고, 또한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 보행자 등은, 신속히 그 횡단을 완료하거나, 또는 횡단을 중지하고 (보도로) 되돌아와야 한다. 2) 횡단보도를 건너고자 하는 특례특정 소형원동기가 달려있는 자전거(전기자전거 등)와 보통자전거는 도로의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한국과 일본 모두 보행 신호등(신호기)의 녹색등화 점멸을 횡단을 시작하지 않은 보행자에게는 ‘횡단 금지’를, 이미 횡단을 시작한 보행자에게는 ‘신속한 횡단 완료 혹은 횡단 중지 및 보도로의 복귀’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에서 녹색 등화의 점멸을 위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면, 일본의 보행자 전용 신호기가 녹색점멸을 시작했을 때 짧은 시간 동안 점멸을 지속하다 곧 적색등화로 바뀌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건너지 말라’는 뜻이니까요. 그럼 한국의 신호기는 왜 오랜 시간 점멸을 지속할까요?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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