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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May 23. 2023

엄마가 아닌 다른 일

워킹맘 예행연습

2023년!

해가 바뀌면서 근거없는 자신감이 불쑥 튀어올라 다시 교단에 설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단을 떠나 있던 시간이 꽤 오래 되었고, 머릿 속에 남겨놓은 것보다 잊은 것이 더 많았지만 나의 능력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채용 공고를 보고 무작정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큰 기대없이 여기저기 뿌렸던 이력서인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운이 좋게도 이력서를 넣었던 모든 곳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그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라 면접을 보고 합격하게 되었다.

공백이 길었지만 아직 내가 설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무한정 채워지는 날이었다.

‘그래, 나는 죽지 않았어.’


하지만 합격의 기쁨 뒤엔 넘어야 할 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며,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역할과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은 내가 일을 선택할 때에도 많은 제약을 가져다 주었다.

야근도 없고, 일반 직장인 보다 퇴근이 빠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등하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과 면접을 거치는 동안 별 말 없이 지켜보던 남편이 아이의 등하원 문제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맥락없는 죄책감을 나는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했다.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모두 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책감과 서운함으로 점철된 마음은 잠깐 넣어두고 내 시간표와 아이의 일과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등하원 계획을 세워나갔다.

다행히 남편은 평일에 쉬는 날이 많았고, 일주일에 1~2회, 1~2시간 정도만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 원활히 해결될 것 같았다.

어쩌면 몇 주 정도는 친정부모님 도움 없이도 가능할 것 같았다.

조종사의 스케줄 근무가 엉뚱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 케어 문제를 마무리 짓고 3월 수업 준비를 하며 문득 내가 정말 잘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킹맘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 일과를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말 그대로 가정과 일의 양립이 가능할 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남편이 갑자기 요리를 잘하게 될리가 없었고, 아이가 갑자기 자기 일을 스스로 하게 될 일도 없었다.  

온전히 나의 몫이던 집안일에 학교 일까지 더해질 게 너무나도 뻔한데, 스스로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가는 건 아닌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가 아플 땐 어떻게 하지?’

‘친정부모님도, 남편도, 나도 아이를 봐줄 수 없는 날에는 어떡하지?’

‘주말 외에는 집안일에 손도 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워킹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돌발상황들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워 아득해졌다 아찔해졌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나는 겨우 잡은 별거 아닌 이 일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냥 막연히 지금 이 일을 포기한다면 앞으로 정말 내 인생에 다시는 ‘일’(work)이란 없을 것만 같았다.

지난 3년간 엄마로서, 아내로서 충실했으니 이젠 나로서 충만해지고 싶었다.


수업 준비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학생들과 호흡하는 수업 시간은 늘 설레었다.

‘일’은 오히려 나를 ‘생기’있게 만들어 주고, 충전해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3월 한 달 간의 적응 기간을 마치고, 나는 자연스레 워킹맘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시작하기 전 돌덩이처럼 나를 짓누르던 염려와 근심들을 조금 내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일상은 잘 굴러갔다.

집안일은 조금 미루어도 되고, 아이는 꼭 내가 24시간 붙어있지 않아도 잘 자라주었다.

일과 가정이 저울이 평형을 이루듯 공평하게 나누어질 수 없으니 더이상 저울질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기 보다는 모든 것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갖기로.

그것이 바로 엄마가 꿈이 아니었던 내가 진짜 내 꿈을 찾아가기 위한 경로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일’을 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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