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속 내 꿈 찾기
“그래서 네 꿈은 뭐야?”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받았던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의 소실점 너머 그 어디쯤에 나에게 이 질문을 던졌던 친구가 불현듯 생각났다.
우린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나는 나의 최종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였다.
초등학교 동창이던 그 친구는 술을 한 잔 하다 나에게 꿈이 무어냐고 정말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참 오랜만에 그런 질문을 받아서 순간 말문이 막혀 얼어붙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래서 ‘어디에’ 취직을 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은 있어도 나의 순수한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친구의 느닷없는 질문에 내 마음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그 꿈을 발설했다.
누군가 비웃을 것만 같아 꽁꽁 숨겨두었던 꿈을 술의 힘을 빌려 당당하게 말하고 나니 왠지 그 꿈이 정말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도 잠시 들었었다.
친구는 다행히 비웃지 않았고, 오히려 꿈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며 그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고 진심 어린 눈빛과 온기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 꿈은 다시 마음 속 저 깊은 심해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리고 그 꿈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는 그 친구 이후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꿈에 대한 물음표는 육아를 하면서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작디 작은 아이가 내 품에서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가 언제 자랄까?,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까?와 같은 호기심의 불씨가 나의 꿈으로 옮겨붙었다.
내가 하고싶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아이를 재우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제 더이상 아무도 나에게 던져주지 않는 질문들을 내가 나에게 정성껏 물어봐주었다.
꿈에 대한 공상은 길고 지난하며 기약없는 육아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육아에 틈이 생기면 그 곳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나는 아주 소소한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책을 읽었고, 어딘가에 글을 남겼으며, 팟캐스트에서 원서 읽기를 구독하며 하루에 3-40분씩 영어 공부를 했다.
일을 그만두고 생긴 불안감들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를 향해 서 있는 안테나를 계속해서 작동시키기 위해, 소일거리들을 계속 해 나갔다.
신기하게도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접은지 오래되었는데, 이제 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을 비우니 꿈이 가득 들어찼다.
시험이나 취업의 압박 없이 순수한 나의 의지로 해 나가는 모든 일들은 재미있었고,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 동안 물리적 시간이 없어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아주 틈틈이 하며 꿈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더 바쁜 일상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다.
언젠가 엄마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한창 나의 미래에 대한 부푼 공상으로 매일 밤 잠에 들던 사춘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문득 엄마의 꿈은 무엇인지,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궁금해져 주말 한낮에 엄마와 마주 앉아 무심히 그런 질문을 던졌었다.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수녀’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결혼 이후 불교 신자로 지내왔는데 ‘수녀’라는 뚱딴지 같은 얘기를 꺼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 수녀가 되고싶었느냐고 물으니,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의 아빠, 즉 나의 외할아버지가 너무나 무서웠고, 엄했기에 엄마는 세상 모든 남자들이 외할아버지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수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고.
듣고보니 엄마의 꿈은 도피에 가까웠다.
외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지만, 외할머니와 이모, 삼촌들을 통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어떤 성정을 가진 분이셨는지 내가 직접 본 것 마냥 생생하게 그려졌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까봐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엄마의 꿈 얘기를 듣고 마음이 따끔거렸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다니…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어쩌면 딸에게 조차 말하기 민망한 거대한 꿈이 엄마의 마음 속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보다 더 꿈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꿈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해 딸인 나에게조차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늦었지만 그 알 수 없는 엄마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끝내 엄마에게 지금이라도 꿈을 이루어보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고, 어느새 내가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자식을 키우며 꿈을 꾸고 있다.
내 꿈은 엄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통해 꿈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꿈에 목마르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더라도, 말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며 꿈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