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15차__Q. 20대가 되어 처음으로 경험해 본 일은?
치과에서 받는 신경치료나 전무후무한 꼰대와의 만남 같은 걸 제외하면,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너무너무 좋다. 처음 먹어보는 것, 처음 해보는 일, 처음 가보는 곳. ‘처음’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대되고 설렌다. 고삐가 풀린 20대와 ‘처음’이라는 단어는 정말 잘 어울린다.
Q. 엄마, 20대 초반에 처음 경험해 본 일은 어떤 게 있었어?
졸업하고 가장 처음으로 접한 게 술이었어. 아버지가 샴페인을 준비해 놓으신 거야. 한 잔 마셔 보라면서 따라 주셨어. 달착지근했던가?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어.
그런데 맥주는 딴 판이었지. 가장 친했던 친구 둘이랑 나랑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거든. 그런데 마침 그날 선생님이 선생님 댁 셋방에 살던 공군 아저씨랑 약속이 있으셨던 거야. 미군 부대 피엑스(?)에 같이 가기로. 그때는 공군과 미군 부대가 서로 연계되어 있었나 봐.
우리도 얼결에 따라갔어. 그동안 동네에 미군 부대가 있었어도 길에서 미군을 만난 적은 없었던 거 같아. 그런데 그곳에 들어갔더니 미군들이 꽉 차 있었어. 게다가 젊은 아가씨들이 미군들의 무릎 위에 앉아 술도 마시고 노닥거리고 있었지.
쭈뼛거리며 둘러보고 있는데 그 공군 아저씨가 캔 맥주를 들고 와서 하나씩 주시더라고. 선생님이 마셔 보라고 하셔서 ‘홀짝’ 한 모금 삼켰어. 이런 이게 뭔 맛이야? 씁쓸하고 지리고. 우리 셋 다 더 이상 입에 대지도 못했어. 그대로 남기고 나왔어.
그리고 고량주도 한잔 마셔봤어. 모슬포 지역 출신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모두들 고량주를 한 잔씩 마셔야만 한댔어. 한 번에 들이켜래. 꿀꺽 넘기는 순간 숨이 확 막히는 거야. 식도가 타는 줄 알았어. 고량주는 그때 먹어보고 다시는 안 먹었어. 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도 같고.
이렇게 술은 경계심을 풀고 나에게 다가왔지.
찡그린 얼굴을 조금씩 펴 주면서.
선생님 놀이도 했었지. 여름 방학 때, 하루 날을 잡아서 모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간 거야. 대학생들의 자원봉사 같은 건데 학생들의 꿈을 일깨워 주려고 운영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해. 무슨 내용으로 한 시간을 보냈는지는 생각 안 나. 하지만 재미있었던 거 같아. 학생들이 즐거워했거든.
과외도 했었지. 알바라는 건 없었어. 그 당시는 대학생들의 그룹과외가 성행했지. 나도 중학생 대여섯 명을 가르쳤어. 영어 수학 두 과목만. 대부분이 그랬어. 내 공부하랴, 가르칠 공부 하랴 바빴지. 그때만 해도 영어가 듣기 평가나 회화 위주가 아니라 문법 중심이었기 때문에 근근이 이끌어 갔어. 수학은 내가 재미있었으니 말할 나위가 없고.
이렇게 하나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나갔지.
영숙은 술을 정말 좋아한다. 술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너는 안 좋니?”하고 되묻는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영숙을 바라본다. “아이고, 말을 맙시다. 어머니...” 처음 경험한 일에 대한 질문에 술 얘기가 나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찡그린 얼굴을 펴 주었다.’는 표현이 적혀있을 줄은 몰랐다. 영숙에게 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술이 싫다! 영숙이 너무 좋아해서 더 싫다!
☎ Behind
엄마 술이 왜 그렇게 좋아?
뭘, 왜 좋아~~~
술의 힘이 아닐까? 그게?
뭐라고?
마시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힘이 술에 있는 거 아닐까?
엄마, 그런 식이면 술은 마약이야.
좀 약한 마약. 그런 식일지도 모르지.
그거 인정해. 엄마도.
인정하면서도 마약을 끊을 생각은 없구먼.
술은 그래도 약하잖아.
과연 약한 걸까?
어. 약하지.
엄마가 수십 년간 못 끊었는데 약해?
엄마는 못 끊는다기 보단, 끊고 싶지가 않은 거야.
자유의지를 되게 강조하네.
술도 하나의 재미인데, 그걸 없애고 싶지는 않은 거지.
그래요.
하나의 재미로만 남겨둬.
모든 재미로 생각하진 말고.
그래. 알았어.
#제주 #노형수퍼마켙
본 게시물의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