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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Jan 26. 2023

영숙’s answer. 2년에 한 번씩 이사하기

엄마 인터뷰 20차__Q. 이사 에피소드가 있나요?


      

일 년에 한 번 정도우리 가족은 이삿짐을 쌌다가 풀었다두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강화 안에서 이사한 횟수가 아마 아홉 번 정도 될 것이다어린 나에게 그날은 신기한 일투성이였다이사하는 며칠 동안모든 짐들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가 박스에 담겨 쌓였다가 다시 빈집의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영숙에게 이사는 어떤 장면으로 기억돼 있을지 궁금해 물었다.        

     

 



Q. 엄마이사 참 많이 했잖아생각나는 일 없어?   

  




몇 시간을 달려 강화로 들어왔어. 짐을 풀고 대충 정리하고 보니 9시야. 배가 고파. 시내로 나왔어. 깜깜해. 도로 양옆으로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은 거야. 헤매다가 어찌했는지 모르겠어. 드디어 불 켜진 곳이 한군데 있었는지. 아님, 집에 돌아와 냄비밥을 해 먹었는지.    





다음 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서 나와 봤어. 대남 방송인 거야. 생전 처음 들어본 거지. 바로 건너편에서 확성기를 틀어 놓은 듯했어.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식사 하셨시꺄?”

“어디 가시꺄?”

오래돼서 맞는지 모르겠는데 말끝마다 “-시꺄?”를 붙이는 거야. 정말 별난 세계에 온 거 같았어.    

  




그래도 ‘전봇대 부동산’은 진해나 포항이나 강화나 똑같더라. 전세를 내놓을 때 몇 평, 방 몇 개, 전세금 얼마 그리고 전화번호를 쓴 종이(16절지?)를 전봇대에 붙이는 거야. 전화가 오고 집 보러 사람이 오면 이사를 들어올 수 있는 날짜와 내가 이사를 갈 수 있는 날짜를 맞춰야 해. 맞지 않으면 또 다른 전화를 기다려야지. 우리는 그렇게 이사를 하곤 했어.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훈수 두던 동기생 부인네가 마송으로 이사를 왔네. 포항서 이사 나오며 감정을 다 털어 버려서인지 반가웠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살림도 제일 잘하고 붙임성도 좋고 그래서 내가 인정하기로 했어. 다른 동기생분들도 마송이며 군하리로 이사를 왔어. 부부 동반으로 격월로 했던가? 저녁 식사를 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즐겁게 지냈지.     


여자들끼리도 낮에 모임을 가졌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점심 초대를 하기도 했고. 그럴 때 선물로 받은 그릇도 있어. 아기가 태어났을 때, 백일 때, 돌 때 그런 날들에도 몰려다니고. 이사할 때도 그랬지. 근데 이사를 제일 많이 한 집이 우리 집이야.     





아빠가 여기저기로 근무처를 옮겨서도 그렇고. 전세금에 맞춰 깔끔한 집으로 가면, 좁아서 넓은 집을 찾게 되고. 살다 보면 구질구질해 보이고. 이렇게 마음을 못 잡아서 그랬어.     


또 한몫한 이유가 있는데 나 때문이야. 먼저도 밝혔지만 맨날 싸움질이었잖아. 옛날 집에 무슨 방음이 됐겠니? 밤새 시끄럽게 싸워놓고 주인아줌마 얼굴 보기가 창피한 거야. 아빠는 뭔 일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쓱 나가버려. 나한테도 똑같아. 저녁에 퇴근해서도 그래. 어젯밤에 싸운 시간은 아빠 사전에 존재하지 않아.     





뚱해가지고 꼭 해야 하는 말을 볼멘소리로나 하고. 몇 날 며칠 말도 안 하고 있는 나를 이해를 못 하지. 어떻게 밤새 싸우고 나서 시시덕거리고 그럴 수 있냐는 건 엄마의 말이고. 아빠도 내가 생경했지만 엄마도 마찬가지였어. 이렇게 싸우는 바람에 주인아줌마랑 가깝게 지낼 수가 없었고.(정작 주인아줌마는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 그래서 이사를 자주 가게 된 거야.


시골로 내려와서는 우리 집이라 눌러살고 있어.

이게 마지막 이사이길 바라.





영숙에게 이사는 경험이 아니라 변화였던 것 같다제주에서 진해로진해에서 포항으로포항에서 강화로강화에서 함평으로 간 영숙에게 그 변화들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냄비밥확성기전봇대 같은 것들은 영숙의 일상에 작은 재미도 주었겠지영숙은 이제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그 말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끊임없이 변화를 바라다가 차츰차츰 안정을 추구하는.      

                  


☎ Behind     

엄마, 냄비밥을 언제까지 해 먹은 거야?

글쎄, 강화로 이사하고 나서 얼마 안 돼서 압력밥솥을 샀거든. 

그전에는 냄비밥을 해 먹었겠지?

압력밥솥이면 가스렌지에 올려서 썼던 거 말하는 거지?

그렇지. 처음에는 그게 무서워가지고 못 쓰고

아빠 있을 때나 쓰고 그러다가 점차 익숙해졌지.

엄마가 압력밥솥에다가 갈비찜도 자주 해주고 그랬는데, 기억나?

그래 갈비찜도 해 먹고 그랬지.

냄비밥은 잘하는 편이었어?

몰라. 하하. 기억도 안 나.     


나도 전봇대 부동산 생각나.

엄마도 붙여본 거야 그럼?

몇 번 붙여봤지.

근데 우리는 전세 살았잖아.

새로운 세입자 구하는 건 집주인이 하는 거 아냐? 

주인한테 맡겨 놓으면 

집 나가면 그때 돈 준다는 둥 어쩌고저쩌고하니까.

빨리 나가려고 우리가 한 거지.

그렇구나. 그런 시절이 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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