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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Feb 09. 2023

영숙’s answer. 커다란 아기와 자그마한 엄마

엄마 인터뷰 21차__Q.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영숙은 키가 아주 작은 편이다반대로 나는 키가 아주 큰 편이다.(174cm) 나는 종용을 닮았다.(185cm) 키만 닮은 게 아니라 몸집까지 똑 닮았다나는 아기 때부터 뼈대가 굵고 튼튼해 안아 들면 꽤 묵직했다고 한다그런 나를 이고 지고 다녔을 젊은 영숙의 모습을 떠올리면 종종 미안해지곤 한다.        


      



Q. 엄마는 나 키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어?

         




아기를 데리고 멀리 다녀오는 것이 힘들었어. 네가 세 살 때, 진해에서 함평까지 구정을 지내러 온 적이 있었거든. 차를 네댓 번 갈아타야 하는데 엄마는 당시에 멀미를 심하게 했어. 한 시간 거리도 멀미약을 먹어야 했고, 어떤 날은 멀미약 향 때문에 먹자마자 구토를 한 적도 있어. 나중에야 키미테가 생겼고 이번에 보니까 알약도 나왔더라.     





멀미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너를 업고 우리 둘이서 시골을 찾아온 거야. 아빠는 명절 때마다 나라를 지키고 있었지. 겨울이라 추워서 너나 엄마나 옷은 두껍지, 포대기도 두껍지, 차에서 내릴 때면 씨름을 해야 하는 거야. 너를 업고 포대기를 두르려는데 손이 안 닿는 거지. 띠를 네 엉덩이 뒤쪽에서 교차시켜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버둥거리고 있었더니 옆에 아주머니가 도와주시더라고.     





그때는 기저귀 가는 곳도 따로 없었어. 어떻게 갈았는지 모르겠네? 마지막 버스에서는 아예 너를 업은 채 서서 왔어. 정류장이 아니라 중간에 내려야 하는데 혹시나 못 내릴까 봐. 커다란 가방엔 천 기저귀가 잔뜩 들어 있었어. 그 시절엔 종이 기저귀가 없었거든. 세탁기도 없으니 겨울이라 말리기도 힘들어서 넉넉하게 갖고 와야 했어.     





너를 업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시골집에 들어서면 컴컴했지. 할머니랑 어머니랑 네 작은 고모랑 막내 삼촌이 살고 계셨어. 얼마나 반가워들 하셨는지 말 안 해도 알겠지?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했어. 잘 데리고 놀아 주셨지. 네가 낯가리고 엄마만 쫓아다니면서 울기도 하고 그랬으면 엄마가 부엌일을 좀 덜 했을 텐데. 한 번도 안 그러데? 그래도 내 아기를 그렇게 이뻐해  주시니 정말 고마웠지.     





또 멀리 갔던 일이 생각나네. 한 네 살쯤 됐을까? 강화에 살 때 ‘짱구마을’이라는 데를 갔었어.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로 건너갔고, 거기서 버스를 탔어. 그 버스는 보문사를 왕복하는 버스였는데, 중간에서 내리면 염전이 넓게 펼쳐져 있었어. 그 사잇길로 걷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길은 끝이 없는 거야. 너는 다리 아프다고 업어달라는데, 엄마는 과일을 한 아름 사 들고 가느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 당시는 여름용 포대기가 없었던가 봐.     





몇 차례 쉬어가면서 염전 끝 길에 다다랐어. 거기가 ‘짱구마을’이었고 아빠가 근무하던 곳이야. 엄마가 말도 없이 찾아갔던 건가 봐. 그렇게 멀 줄 모르고. 미리 말을 했으면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선착장까지 마중 나왔을 텐데. 중간에 공중전화도 없었나 봐. 그냥 간 걸 보니. 거기서도 군인 아저씨들이 무지 많이 이뻐해 주셨지. 가는데 마다 귀여워했어. 같은 개월 수의 아기들보다 말을 잘하고 야무졌거든.    

  

"아무튼 우린 그렇게 먼 길을 힘들게도 다녔더랬어."        

        




육아는 장비 빨이라는데장비 중의 최고 장비, ‘자가용이 없었던 종용과 영숙그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영숙에게 먼 길을 오가야 하는 육아는 참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다들 그렇게 사는 시절이었겠지만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짱구마을로 걸어가는 영숙의 손에 들린 과일 봉지라도 대신 들어주고 싶다


                  

☎ Behind 

    

엄마, 멀미가 심했던 건 냄새 때문이지?

엄마도 나도 냄새에 민감하잖아.

향수 쓰는 거 싫어하고, 

남자 스킨 냄새만 맡아도 코가 따갑고.

그래. 으으으으으. 싫어.

나도 어렸을 때 멀미 심했던 기억나.

엄마도 나도 버스 타면 비닐봉지 귀에 걸고 있었는데.

기억 안 나?

기억나.

엄마 신기하게 멀미 별로 안 하게 됐네?

‘인두편도’라는 게 있어.

그걸 지져버렸어.

엥?

그게 뭐야?

엄마는 목이 자주 따가웠어.

시골에 오면 아궁이에 불을 팍팍 때잖아.

연기도 나고 건조해서 목이 너무 따가운 거야.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그걸 지져버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냄새 못 맡게 된 거야?

어, 그것 때문에.

근데 지금은 냄새 좀 맡아져. 돌아왔어.

그러면, 목 따가운 것도 다시 돌아왔어?

아니. 그렇지는 않아.

엄마, 냄새 못 맡는 거 알고 한 거야?

몰랐지.

진짜 황당하다. 의사가 설명도 안 해준 거잖아.

근데 설명 들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 같아.

너무 따가워가지고.

헐. 어쨌든 그러고서 멀미가 없어졌다는 거지?

어.

그럼 나는 왜 멀미가 없어졌지?

너는 어릴 때 엄마가 멀미하니까 

그거 보면서 덩달아 멀미한 거 아닌가 싶어.

나의 멀미는 온전히 정신적인 문제였던 거야?

하하하. 그런가 봐.  

   

아빠랑 그렇게 사이좋게 지냈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과일바구니 사 들고 배 타고 버스 타고

그 멀디먼 마을까지는 왜 간 거야?

하하하하.

그래도 한 번은 면회를 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겠지.

‘도리’ 같은 건가?

그런 거지 뭐.

그리고 그 마을 이름,

이상하다 싶어서 내가 찾아봤지.

‘짱구마을’이 아니라,

‘장구마을’, ‘장구너머마을’이래.

마을 입구 모양이 ‘장구’를 닮아서 그렇다나?

지금까지 ‘짱구마을’인 줄 알았는데?

너무 이상하잖아.

그 동네는 짱구가 많이 나오나부다 했지.     


아무튼, 엄마 고마워.

그렇게 작은 몸으로 커다란 아기를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겠어.

다음 생에는 엄마가 커다란 아기로 태어나.

내가 자그마한 엄마로 태어나서 

많이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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