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22차__Q. 엄마 곁을 떠나 버린 물건은 어떤 게 있었어?
영숙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질문을 할 때마다 무슨 답변이 되돌아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질문을 던질 때는 구십오 퍼센트 정도 답변을 예상했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신문리 이층집 패물 도둑 사건은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 집은 유난히 골조가 번듯하고 정원이 광활해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러블리 스위트 홈으로 보였다. 하필 그런 집의 널찍한 1층에 전세로 들어가 살았던 우리는 동네 좀도둑들의 타깃이 됐다.
Q. 엄마, 살면서 도둑맞은 물건이나 잃어버린 물건 중에 가장 아까운 건 뭐였어?
네가 열 살이나 혹은 열한 살이었을 거야. 겨울방학이었어. 시골에 내려간 거야. 너랑 네 동생이랑 엄마랑 셋이. 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께서, 명절 때마다 우리가 집에 빨리 돌아간다고 서운해하셨거든. 그래서 방학을 맞아 마음먹고 간 거야. 왔더니 할머니랑 작은고모는 서울에 가시고 증조할머니랑 막내 삼촌만 계셨어.
마음먹고 내려오긴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 할머니와 고모가 안 내려오시기에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지. 전기밥솥은 있으니까 찌개를 끓일 수 있는 전기냄비(?) 같은 걸 사두고서. 막내 삼촌한테 증조할머니를 맡기고 우린 가버린 거야. 엄마도 참 철이 없었지. 착한 일 한답시고 내려가 놓고 그 모양을 만들었으니.
제주도 친정에 가서 며칠 지내고 한 이십일 만에 강화 집으로 돌아갔더니 난장판이야. 도둑이 들어서 엄마 결혼반지며 목걸이며 너희들 돌 반지랑 팔찌 그리고 카메라까지 싹 갖고 가버린 거야. 주렁주렁 끼고라도 갈걸. 달랑 금반지 하나만 끼고 갔거든. 하나 남은 그것도 IMF 때 돈이 궁해서 금 모으기에 내놨어.
패물이 하나도 없게 된 거야. 아빠랑 엄마랑 사이도 안 좋은데, 사분사분 얘기하지도 않을 거고 보나 마나 퉁명스럽게, “금반지 하나만 사줘요.” 그럴 테니 말을 못 하고 그냥 살았네. 몇십 년을.
도둑맞은 방바닥에 운동화 자국이 선명했어. 창문 쪽으로 나 있더라고. 발자국이 손상되지 않게 모두 뚝 떨어져 있으라고 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어. 드라마에 보면 그러잖아. 작은 단서 하나 가지고도 범인을 잡아내고. 뭐 그런. 본 건 있어가지고 기대를 하며….
경찰 아저씨가 오셨어. 그거 갖고 어떻게 잡느냐고 몇 마디 물어보고 가셨어. 다 내 탓이지. 문만 잠그면 된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왜 그렇게 어수룩했을까? 그 도둑놈도 가격을 후려쳐 몇 푼 받지도 못했을 텐데 아깝다.
오랫동안 가슴이 쓰렸고 화가 났지.
내 어수룩함에.
열 살의 그 겨울로 기억을 돌려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몹시 추웠고, 나무 기둥 아래나 계단 밑에 덜 녹은 눈이 쌓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영숙은 한 보따리의 짐을 들고 걷느라 버거워했다. 영숙이 짐을 내려놓고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잡아당겼을 때는, 집 안에서 밖으로 뭔지 모를 싸늘한 기운이 비집고 나왔던 것도 같다. 그리고 영숙이 말했다시피 우리의 러블리 스위트 홈에서 반짝이는 것들은 사라져 있었고, 남의 집 안방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온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의 흔적만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 Behind
엄마, 그때 문만 잠그고 가지 않았어.
나 그때 기억나.
카메라는 안방 옷장에 있었지만,
귀금속은 한데 모아서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에
피아노 방 벽장 안에 넣어두고 갔어.
벽장이 있었어?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너가 기억이 좋구나.
나도 충격적이었던 거지.
아무튼 도둑이 다 휘저어서 찾아낸 거야.
엄마도 나름 머리를 썼던 거고.
하하하. 조금 썼네. 조금.
너무 어수룩했던 건 아니라고 얘기해 주려고.
고맙다. 하하.
그 집에 귤 도둑 들었던 것도 생각나?
어. 기억나.
소화기도 가져갔잖아.
아, 맞다! 소화기.
소화기를 왜 가져갔지?
애들이 장난하려고 그랬겠지 뭐.
부엌에 들어와서
양파망에 있는 양파 한쪽에 다 쏟아놓고
귤 잔뜩 담아갔잖아.
맞아.
그 집은 전세이긴 했지만,
우리 형편에 너무 큰 집이었어.
정원은 운동장만 하지.
그래, 완전히 동산이었어.
방 세 개에 마루 거실에
미국처럼 복도를 통해서 부엌에 가고.
그러니까 도둑놈들이 우리 잘 사는 줄 알고
자꾸 들어왔던 거지.
원인은 그거였구나.
몰랐어?
어, 그 생각은 못 했다.
그때 엄마 결혼반지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렴풋이 기억나.
엄마도 기억나?
기억나. 정확하게 기억나.
백금 반지에 다이아가 네모 모양이었어.
그래, 맞아.
우리 그 옛날에 잃어버린 걸 기억하는 게 너무 웃기다.
엄마는 얼마나 아까웠을까.
아까웠지.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효진이한테 물려주지 않았을까?
그럼, 효진이가 아까워해야 하나? ㅋㅋㅋ
나한테는 안줬을 것 같아.
하하하하.
이제 그만 말해.
잊어버린 거 또 끄집어내서 배 아프게 만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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