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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Mar 22. 2023

영숙’s answer. 금붙이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엄마 인터뷰 22차__Q. 엄마 곁을 떠나 버린 물건은 어떤 게 있었어?


  

영숙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질문을 할 때마다 무슨 답변이 되돌아올지 궁금하기도 하고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하지만이번 질문을 던질 때는 구십오 퍼센트 정도 답변을 예상했고그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신문리 이층집 패물 도둑 사건은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그 집은 유난히 골조가 번듯하고 정원이 광활해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러블리 스위트 홈으로 보였다하필 그런 집의 널찍한 1층에 전세로 들어가 살았던 우리는 동네 좀도둑들의 타깃이 됐다.       





Q. 엄마살면서 도둑맞은 물건이나 잃어버린 물건 중에 가장 아까운 건 뭐였어?     

       




네가 열 살이나 혹은 열한 살이었을 거야. 겨울방학이었어. 시골에 내려간 거야. 너랑 네 동생이랑 엄마랑 셋이. 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께서, 명절 때마다 우리가 집에 빨리 돌아간다고 서운해하셨거든. 그래서 방학을 맞아 마음먹고 간 거야. 왔더니 할머니랑 작은고모는 서울에 가시고 증조할머니랑 막내 삼촌만 계셨어.     





마음먹고 내려오긴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 할머니와 고모가 안 내려오시기에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지. 전기밥솥은 있으니까 찌개를 끓일 수 있는 전기냄비(?) 같은 걸 사두고서. 막내 삼촌한테 증조할머니를 맡기고 우린 가버린 거야. 엄마도 참 철이 없었지. 착한 일 한답시고 내려가 놓고 그 모양을 만들었으니.     





제주도 친정에 가서 며칠 지내고 한 이십일 만에 강화 집으로 돌아갔더니 난장판이야. 도둑이 들어서 엄마 결혼반지며 목걸이며 너희들 돌 반지랑 팔찌 그리고 카메라까지 싹 갖고 가버린 거야. 주렁주렁 끼고라도 갈걸. 달랑 금반지 하나만 끼고 갔거든. 하나 남은 그것도 IMF 때 돈이 궁해서 금 모으기에 내놨어.   

   

패물이 하나도 없게 된 거야. 아빠랑 엄마랑 사이도 안 좋은데, 사분사분 얘기하지도 않을 거고 보나 마나 퉁명스럽게, “금반지 하나만 사줘요.” 그럴 테니 말을 못 하고 그냥 살았네. 몇십 년을.





도둑맞은 방바닥에 운동화 자국이 선명했어. 창문 쪽으로 나 있더라고. 발자국이 손상되지 않게 모두 뚝 떨어져 있으라고 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어. 드라마에 보면 그러잖아. 작은 단서 하나 가지고도 범인을 잡아내고. 뭐 그런. 본 건 있어가지고 기대를 하며….     


경찰 아저씨가 오셨어. 그거 갖고 어떻게 잡느냐고 몇 마디 물어보고 가셨어. 다 내 탓이지. 문만 잠그면 된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왜 그렇게 어수룩했을까? 그 도둑놈도 가격을 후려쳐 몇 푼 받지도 못했을 텐데 아깝다.      


오랫동안 가슴이 쓰렸고 화가 났지.

내 어수룩함에.       





열 살의 그 겨울로 기억을 돌려본다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몹시 추웠고나무 기둥 아래나 계단 밑에 덜 녹은 눈이 쌓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영숙은 한 보따리의 짐을 들고 걷느라 버거워했다영숙이 짐을 내려놓고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잡아당겼을 때는집 안에서 밖으로 뭔지 모를 싸늘한 기운이 비집고 나왔던 것도 같다그리고 영숙이 말했다시피 우리의 러블리 스위트 홈에서 반짝이는 것들은 사라져 있었고남의 집 안방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온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의 흔적만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 Behind   

  

엄마, 그때 문만 잠그고 가지 않았어.

나 그때 기억나.

카메라는 안방 옷장에 있었지만,

귀금속은 한데 모아서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에

피아노 방 벽장 안에 넣어두고 갔어.

벽장이 있었어?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너가 기억이 좋구나.

나도 충격적이었던 거지.

아무튼 도둑이 다 휘저어서 찾아낸 거야.

엄마도 나름 머리를 썼던 거고.

하하하. 조금 썼네. 조금.

너무 어수룩했던 건 아니라고 얘기해 주려고.

고맙다. 하하.     


그 집에 귤 도둑 들었던 것도 생각나?

어. 기억나.

소화기도 가져갔잖아.

아, 맞다! 소화기.

소화기를 왜 가져갔지?

애들이 장난하려고 그랬겠지 뭐.

부엌에 들어와서 

양파망에 있는 양파 한쪽에 다 쏟아놓고

귤 잔뜩 담아갔잖아.

맞아.





그 집은 전세이긴 했지만,

우리 형편에 너무 큰 집이었어.

정원은 운동장만 하지.

그래, 완전히 동산이었어. 

방 세 개에 마루 거실에 

미국처럼 복도를 통해서 부엌에 가고.

그러니까 도둑놈들이 우리 잘 사는 줄 알고

자꾸 들어왔던 거지.

원인은 그거였구나.

몰랐어?

어, 그 생각은 못 했다.     





그때 엄마 결혼반지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렴풋이 기억나.

엄마도 기억나?

기억나. 정확하게 기억나.

백금 반지에 다이아가 네모 모양이었어.

그래, 맞아.

우리 그 옛날에 잃어버린 걸 기억하는 게 너무 웃기다.     

엄마는 얼마나 아까웠을까.

아까웠지.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효진이한테 물려주지 않았을까?

그럼, 효진이가 아까워해야 하나? ㅋㅋㅋ

나한테는 안줬을 것 같아.

하하하하.

이제 그만 말해. 

잊어버린 거 또 끄집어내서 배 아프게 만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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