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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Oct 06. 2021

문득 걸음을 멈추며

하루가 36시간이었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새벽부터 야근까지 하며 하루를 마감하지만 서류더미와 사람들에 치여 있는 상황을 시간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상상으로만 펼쳐지는 나의 갇힌 세계다.

소파에 기대어 '대서양 문명사'를 읽는 여유, 아라비카(Arabica)를 내리며 퍼지는 커피 향, 운동복 차림으로 호수공원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사치를 상상하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가을 하늘이 유혹하는 날이면. 하지만 꿈꾸던 일들을 하기에는 눈앞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특히 아이들 교육문제와 어르신들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아이들이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상태이고 어르신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비롯해 병원문을 드나들 일이 늘어난다.


우리들의 삶은 20대면 그 나름대로, 50대면 또 그 나름대로 빡빡하게 흘러가지만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발자국을 돌아봐야 한다.

요즘 나이가 들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어느 학자의 고언이 머리를 맴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라고 한다. 관점을 달리하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단다. 고정관념 바꾸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씩 긴 호흡으로 걷는다.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네”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안 됩니다”라고 거절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일들이 하나하나씩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들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홀로 서야 더불어 설 수 있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요즘 기도는 급한 일로 인해 마음이 분주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땀방울이 땅에 떨어져 허사가 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기를, 여전히 고백과 감사에 인색하지 않기를, 빛나는 50대가 위기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이 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결국 지나친 걱정이 걱정인 것을 아는데도 현실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샐러리맨의 넋두리가 아련한 아침이다.

(2021.10.06.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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