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
요즘은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안곤 한다. 지난주 어느 저녁, 퇴근한 집사람이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자고 나면 괜찮으려니 하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살펴보니 기대와는 다르게 지난밤 잠을 설쳐 피곤한 얼굴이 역력하다. 그리고 설상가상 목덜미도 뻣뻣하다고 했다. '혈압이 높아서 그런가' 고민하다가 따뜻한 물에 담그면 피로가 풀릴지 모른다며 동네 목욕탕으로 나섰다. 한참이 지나 돌아온 집사람은 부황을 뜨고 왔단다. 시퍼렇게 핏기 어린 부위를 보니 맘이 상한다. 요즘 새롭게 벌여놓은 일로 맘고생이 심한가 보다. 안 되겠다 싶어 함께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가지고 점점 단골이 되어가는 약국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와 피곤하다며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집사람을 보니 빡빡한 직장인의 삶이 애처롭다. 30여 년간 맞벌이로 살아온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커피 한 잔을 내려 의자에 앉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는 중년에 접어들었고 아이들은 제법 자라 스스로 생활을 설계하는 첫 발을 내딛고 있어 거들어줘야 할 일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오히려 작은 위로의 말도 건넬 줄 아는 자그마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당연한 변화에 비어 가는 마음을 채울 것이 마땅치 않다. 인생의 간절기에 집사람은 몸과 마음이 심한 계절병을 앓고 있나 보다. "빨리 떨치고 일어나야 할 텐데". 많은 생각이 스치는 오늘은 눈 속에서도 꿋꿋한 자태를 뽐내는 하얀 매화와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을 던지는 동백꽃을 보고 싶다. 평범한 50대 샐러리맨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2021.01.26.. 맑은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