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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혁 Sep 02. 2024

겸손해지자

학교 과제 중 깨달은 겸손이라는 단어

우리 가족은 천주교다. 아빠는 모태 신앙이었고, 나도 모태 신앙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빠는 겸손을 정말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쳤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보다 나를 낮출 줄 알며, 내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이 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이해가 안 간다. 아직도. '그게 겸손이라면, 차라리 안 겸손할래!'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겸손은 단지 자존감을 무한히 깎아내리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한 일도 내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와 있더라도 나는 이 사람들보다 못난 존재라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이 뭐 별일 아닌걸요.’라는 말로 나의 노력을 내가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그때부터 왜 하느님은 겸손하라 했을까를 고민했다. 그 당시에 내 대답은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보이면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남이면 어떻겠는가. 결국 사람은 자신이 상대보다 높은 위치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낮춰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느님은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겸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 왔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알기 때문에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말이다. 일단 그래서 실천은 했다. 나도 겉으로는 ‘에이, 뭘요.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랑하고 싶고, PR 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 물어뜯기기 싫어서. 시기와 질투를 받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정작 나도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보다 잘했다는 소리를 듣거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저게 뭐가 잘한 거야.’부터 시작해서, ‘저건 기획이 이상해. 이게 말이 안 되잖아.’처럼 내가 능력도 없으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괜히 싫어하고 질투했다. 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무시하고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잘못했고, 이거는 이래서 틀렸다는 식으로 말이다. 앞에서는 나를 최대한 낮추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높게 솟아오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겸손을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겸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가면을 쓴 모순이며, 위선이고, 하찮은 자기 비하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어떻게 알았을까?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페이커 덕분에 겸손을 알았다. 지금 대학교 프로젝트로 레이저라는 회사에서 페이커의 브랜드를 분화시키는 제안서를 작성 중이다. 그래서 이번주에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고민했다. 일단 설명을 좀 하자면, 레이저는 서양의 게이밍을 대표하는 회사이다. 그러므로 이 브랜드가 가진 고유적 가치 또한 서양의 사상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이 브랜드의 고유적 가치는 최고라는 자부심이다. 게이밍을 위한 회사 중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고,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성능 또한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에서 동양적 사상이 기반인 페이커를 브랜드로 만든다고 한다. 페이커의 고유적 가치는 겸손이다. 여기가 이제 재미있어지는 포인트이다. 교수님 말로는 외국에 있는 사람들은 겸손하다는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겸손하다는 것은 내성적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이커는 겸손해서 최고다. 이 역설에서 ‘겸손이 뭐지?’를 고민할 수 있다. 페이커가 말하는 겸손은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나를 낮추고 숨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브랜드 ‘FAKER’에서는 이렇게 정의를 했다. ‘겸손이란 남을 존경하고, 그 속에서 배우려는 태도를 말한다.’ 나를 낮출 필요까지는 없다. 회사가 '저는 뭣도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누가 그걸 살까? 있는 그대로의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이다. 나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겸손은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스텝은 상대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모든 순간 모든 자극을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진정한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높이는 것이 되겠지. 페이커는 그렇게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롤 실력을 낮춰서 말하지는 않았다. (모든 길은 결국 저를 통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배우고 있고, 여전히 습득하고 있다. 매번 바뀌고 있으며, 다른 분야의 잘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존경한다. 이것이 정말 겸손이라는 단어를 행동으로 실현했을 때의 예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노력 중이다. 이전에는 과제를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을 때, ‘아 아니에요 ㅎㅎ’ 하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과제 잘했다는 칭찬을 들으면 다른 말이 나온다. ‘아 정말? 고마워! 나 열심히 했잖아 ㅎㅎ.’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혹은 ‘너도 이번 과제 이 부분 잘한 것 같은데 진짜 아이디어 참신하다.’ 그러면 새로운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하루하루 겸손해지는 중이다. 더 배우려고 하는 중이고, 더 존경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다.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매일매일 겸손해야 한다는 것.


겸손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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