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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혁 Sep 28. 2024

사회가 부과하는 예술의 가치

예술은 사과맛이 난다 EP.3_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달항아리의 예술

아래 이미지는 대한민국 보물인 달항아리이다. 

이 달항아리는 여러 가지의 문맥을 가지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달항아리가 담고 있는 예술과, 사회에서는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보물 백자 달항아리 -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다. '참 열심히 노력했다.'


사실 조선시대의 물레로는 저 크게의 항아리를 한 번에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발을 동력으로 삼아서 물레를 굴리기 때문에, 한정된 돌림판과 일정하지 않은 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나는 추측한다. 그럼에도 기필코 큰 항아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에서 방법을 찾아낸다. 큰 그릇을 두 개 만들고, 그 두 개를 위아래로 합쳐서 하나의 큰 항아리를 만드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이다. 


그릇 두 개를 만들어서 포개고 붙여서 하나의 형태로 만든다. 그걸 돌려가면서 모양을 잡는데, 너무 크기가 커서 기울어지고 완전한 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애써서 원의 형상을 만든 후에 그냥 그대로 굽는다. 후대의 사람들은 불완전과 여유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 과연 불완전한 원의 형태를 칭송해서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달항아리를 저렇게 만든 이유는 쓸만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용량의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 저렇게 만들었는데, 사실 쓰는 용도기에 조금 못생겨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사용했던 달항아리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 칭송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달항아리에는 어떤 예술이 담겨있을까? 사실 달항아리에는 예술에 더해 디자인이 담겨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디자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디자인은 예술에 기능을 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무언가를 표현하는 그 행위가 사회에서 기능할 때, 그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예시를 적용해 보자면 이렇다. 달항아리는 큰 도자기를 만들고자 한 도공들의 표현이다. 누군가는 진짜 동그란 도자기를 만들고 싶었을지도. 혹여 누군가는 엄청나게 큰 그릇을 만들고자 말겠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언가를 담는 기능을 했고, 이 기능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큰 용량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호응을 했다. 조금은 구겨지더라도, 큰 용량이었으니 인정했겠지. 그렇게 달항아리는 '디자인'되었을 것이다.


그런 디자인이 지금에 와서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칭송받는다. 아,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나는 달항아리가 예술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활동은 나에겐 예술이다. 다만, 이전에는 실용적 기능만을 가지고 있던, 심지어는 영조 이후로 생산하지도 않은 단종된 제품이 가치 있는 예술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말은 '예술이다'라는 단어가 현 사회에서 미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만 포함한다는 뜻이겠지. 그러면 이쯤에서 이 질문으로 넘어가고 싶다. '좋은 예술'은 과연 존재하는가? 달리 말하자면, 예술의 가치 판단을 일반화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모든 예술은 사회에 의해서 가치가 부과되었다. 사실 이 말은 당연하기도 하고 맞는 말이다. 예술이란 전달의 행위이기 때문에, 잘 전달된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가치를 부과받는다. 그래도 전달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데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예시로 아무도 달항아리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김환기 선생만이 유일하게 달항아리를 모아 두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항아리 값을 꺾아서 사본 적이 없다. 장사꾼이 부르는 값이란 내가 좋아하는 그 항아리 값보다 훨씬 싸기만 했다. 부르는 대로 사고 난 내 심경은 항상 횡재한 생각뿐이었다."

이렇듯 개개인이 느끼는 예술의 가치는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백자가 가장 아름다울 수도 있고, 누구는 청자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 이거는 개인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있고, 어떤 부분에서 공감이 생기느냐에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 모나리자는 그냥 아줌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달항아리가 예술이 되어간 과정을 보면서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예술을 주관적으로 바라볼 것. 사회가 부과하는 예술은 개인에게는 가치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세대에 맞게 다시 예술이라고 말을 거는 달항아리는 사람들이 많이 호응해 주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 말은 즉, 절대적으로 좋은 예술을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미술관을 잘 관람하려면 뭘 봐야 하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 말을 했다.

"작품을 바라봐. 작품만"


자신의 예술을 찾는 게 먼저다. 사회가 좋다고 하는 예술은 그 뒤에 눈여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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