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맛이 난다 EP.4_집요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 Fuck the midtones "
색감 하나의 조정도 집요하게 반응하는 슈타이들을 보면서, 퀄리티는 이런 컨트롤에서 온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집요함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끈기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해졌다.
예술이라는 말에는 재능, 감각 그리고 한 순간에 만드는 작업물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담겨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처음에는 예술이라 하면, 나는 모르는 다른 차원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서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에도 예술은 한순간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슈루룩 해나가는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온전히 예술이라는 영역이 있고, 그걸 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재능과 감각이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산업의 영역에 있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추는 것이 우선이고, 예술적인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생각에서 기인한 덕분에 나에게 예술은 재능과 감각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한순간에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예술과 디자인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생각해온 예술은 그저 있어보이기 위한 상징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지워지고 사라졌지만, 그래도 예술은 창의적인 번뜩임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이 전시를 통해서 무너졌다. 예술은 한순간의 번뜩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꾸준하고 집요한 '노동'이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 생각을 느낀 과정을 따라가보려 한다.
슈타이들은 세심하고 집요하게 책을 만든다. 여기에서의 포인트는 단 한번의 집요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집요함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여러가지 코멘트를 적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색감을 옆에 뽑아 두고, 이미지가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얹어놓았다. 슈타이들이 이 책을 만들면서 저 한번의 피드백만 있었을까? 한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몇십개의 시안을 확인했을 것이고, 같은 페이지를 적어도 10번 이상은 프린트 했을 것이다. 그 프린트의 기간, 그리고 몇십개의 시안을 확인하고 숙고하고, 수정하는 시간은 강한 형태의 노동이다. 그 노동만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나는 노동과 예술이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술을 이전까지 고상하다고 생각해온 것 때문일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적인 고민과 내가 어떤것을 표현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말 표현해보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을 경시한 나를 요즘 돌아보고 있다.
이 에피소드가 내 첫 매거진의 4번째 이야기다. 나는 이 메거진이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예술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서 이번 전시를 보고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같은 시간, 같은 날에 생각하고 글을 써볼 것. 글감이 생각난 한 순간에 번뜩이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생각하고 정리하고 그렇게 정리한 내용을 글로 써내려갈 것. 양이 적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 꾸준히 이어가면서 나의 예술을 점점 정의해갔으면 좋겠다.
예술을 정의하는 이 글이 나의 예술이니까. 집요한 노동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