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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채기 Dec 02. 2023

비이성적 소크라테스

감정에 대하여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굉장히 참신한 영화다. 분노, 기쁨, 우울과 같은 감정이 의인화 되어서 등장한다. 각 캐릭터는 라일리라는 여자아이가 느끼는 감정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라일리 내면에서 그녀를 조종하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정말로 우리를 조종한다. 심지어 이성조차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감정 이성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이성이 매우 감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싶다.


난 예전부터 이성적이고자 노력했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과목도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었고, 소설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다. 영화도 감정적인 영화보다는 철학적인 영화를 좋아했다. 눈물 흘리는 대화보다는 논리적인 대화가 좋았다. 그래서 독서 동아리에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었다. 소크라테스가 상대방을 논박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난 감정은 이성을 방해하는 것. 진리를 흐리는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니체의 저서[비극의 탄생]를 읽게 되었고, 이 책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는 모든 신비주의적 성향이 기괴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특별한 비신비가라고 해도 좋을 거것이다. 신비가에게는 저 본능적 지혜가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에게는 논리적 천성이 일종의 이상 발육을 통해서 과도하게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에게서 보이는 논리적 충동은 그 창 끝을 자신에게 겨냥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에도 얽매임이 없이 도도히 흐르는 분류처럼 소크라테스의 논리적 충동은 일종의 자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전율케 할 정도로 놀라게 만드는 거대한 본능적인 힘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력이다. 플라톤 저서에서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향이 갖는 저 신적인 소박함과 확고함을 조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은 논리적 소크라테스주의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소크라테스의 뒤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가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의 사물을 보아야만 하듯이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움직이고 있는} 이 바퀴를 보아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신도 이러한 관계를 직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도처에서 그리고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의 신적인 소명을 주장할 때 보였던 위엄에 가득찬 엄숙한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니체는 언제나 논리적이고자 하는 소크라테스의 동기를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을 강박적일 정도로 추구한다.  이성을 대하는 태도가 광적이고 종교적이다. 니체는 이성적인 행동의 동기가 매우 감정적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논리적인 소크라테스를 움직인 바퀴는 바로 감정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이성적인 이유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내가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 이유, 진리를 추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단지 그게 멋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감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더더욱 이성적이지 못했다. 감정적이었던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미웠다. 그 반동 작용으로 나는 이성적이고자 했던 것이었다. 차분한 과학과 수학자들이 멋져 보였다. 논리가 주는 확실함 속에서 나는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애초에 니체를 읽은 것도 그저 나를 옥죄던 기독교를 부정하기 위한 논리를 찾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성을 사용한 동기는 매우 감정적이었다. 순전히 이성적인 동기란 매우 드물다. 아마 없지 않을까?


애초에 이성과 감정은 비교가 불가능한 것 같다. 그건 마치 축구와 축구 선수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이 둘은 다른 범주다. 축구 선수는 단지 축구라는 게임이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이성은 도구이고 감정은 힘이다. 이성은 감정이 휘두르는 도구다. 우리는 언제 이성을 사용하는가? 우리는 이성을 어디에 사용하는가? 이성 뒤에는 언제나 감정적 동기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해도 그 행위는 결국 감정적인 게 아닐까. 그리고 감정이 이성을 사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감정은 이성적인 게 아닐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을 움직이는 감정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화가 난 지도, 우울한지도, 외롭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 감정을 이성적인 출구로만 발산해 왔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보다 감정을 잘 챙겨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이성적이고자 하는 것만큼 비이성적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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