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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채기 Dec 29. 2023

두 번째 스핑크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두 번째 스핑크스


철학을 공부하는 모든 대학생은 각자만의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성적에 맞춰서,

또는 적성을 따라서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대답은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곤 합니다. 철학을 1년 넘게 공부하다 보니 저의 이유도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동기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흥미는 익숙함에

가려지고 말았죠.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학을 왜 공부하는지 물어왔지만, 어느 순간 말문이

막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스핑크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철학 공부를 정당화해줄 보다 객관적인 답변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대답은 바로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대학생일 때이다." 였습니다.


교양의 적기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주 유명한 거짓말이죠.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시기란 분명 있습니다. 언어는 어렸을 때 배우는 게 훨씬 유리합니다. 5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아이는 평생 친구를 사귀기 어렵습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사실상 늦은 것이죠. 물론 포기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오늘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늦은 때란 없다고 말했던 사람은 아마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는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을 핑계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도, 10년 뒤도

늦은 게 아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가족 식사를 다음 주로 미루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운동은 다음 달로

미루죠. 그리고 교양을 쌓고 싶지만, 독서는 내년으로 미룹니다. 그때도 늦지 않다고

말하면서요.

저는 무식하게 돈과 쾌락만을 좇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품위 있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적기는

언제일까요? 저는 교양 쌓는 일을 뒤로 미루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단 취직하고

삶이 안정되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죠. 그러나 취직 후에 교양을 쌓을 수 있을까요?

퇴근한 직장인이 책상에 앉아서 독서하고 싶을까요? 직장인이 교양 쌓기는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대학생일 때가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이란 지식과

지혜를 위해 모든 시간을 비워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대학생쯤 되면 지성이 충분히

발달해 있죠. 즉, 대학생은 교양을 위한 시간과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교양의 토대


어떤 악기도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제가 곡 하나를 완주하고 싶다고 해봅시다. 아무런 기초

없이 악기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학교도, 알바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연습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죠. 짧은 시간과 굳은 손가락으로는 앞길이 막막합니다 .

그런데 만일 어렸을 때 악기를 배워 놓았다면 어떨까요? 그때 배운 기술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가진 짧은 시간도 곡 하나를 연주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이처럼

토대가 이미 있다면 앞길은 비교적 수월해집니다. 교양을 쌓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시절 쌓은 교양은 소중한 토대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배운 악기나 언어처럼 말이죠. 대학

이후에 쌓이는 모든 교양은 바로 그 토대 위에 쌓이게 됩니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직장인에겐 독서는 너무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반면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어떤 책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독서하는 습관과 방법까지 안다면

더더욱 수월하겠죠. 퇴근 후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깊이가 다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상상과 정신분석” 수업에서 프로이트를 배웠습니다. 그 이후로 영화에 녹아있는

프로이트의 사상을 발견하고, 프로이트의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합니다. 결국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누구는 시간만 죽이지만 저는 정신분석학 예시를 습득합니다. 이처럼 앞으로의

교양은 상당 부분 대학 시절 쌓은 교양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생 때 무엇을 공부하면 좋은 토대가 될까요? 폭넓은 교양을 쌓고 싶다면

철학은 훌륭한 선택지가 되어 줍니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 실존 철학을 이야기하고, 많은

자기계발서가 니체를 인용합니다. 예술철학 없이는 현대예술을 이해할 수 없고 정치철학

없이는 정치를 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철학에 뿌리를 둔 분야는 정말 많습니다. 즉,

철학은 가장 확실하고 광범위한 교양의 토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두 번째 스핑크스에게

대답합니다.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생인 지금 철학을 공부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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