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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등학교 선생님 Jan 19. 2021

군대에서 막 전역한 친구와 여행 가면 벌어지는 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 유럽 여행을 갔다. 그 친구는 틈만 나면 계속 군 생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이야기는 기 승 전 군대였다. 나도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하고, 전역했다면 맞장구치며 공감을 많이 했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대할 예정이어서 그때 당시 미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재미도 없었다.


 영국 런던을 돌아다닐 때였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하기 위해 각을 잡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로봇처럼 멋지다!”

감탄을 하며 구경을 하는데 옆에서 친구가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저거 제식 엄청 연습해야 할 거다. 멈추어 섰다가 방향 트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좌향 앞으로 가, 우향 앞으로 가도 하고 있잖아. 훈련소에서 저런 거 빡세게 훈련시키니까…….”

 다음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의 군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시간이 남길래 근방에 있는 군사 박물관에도 갔다. 별생각 없이 간 것이었는데 입구에 들어선 순간 아차 싶었다. 장시간 걸어 다니느라 맥을 못 추던 친구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것이었다. 무기, 전쟁과 관련된 전시품이 많았는데 친구가 그것에 대해 술술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박물관에 상주하는 가이드 같았다. 친구 덕분에 내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각종 무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쌓고 나왔다. 무기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왔음에도 군대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점차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에펠탑을 볼 때에도, 고풍스러운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을 거닐 때도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야! 나는 군대 가기 전에 피라미드를 사람이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갔다 오니까 군인 동원되면 충분히 만들 수 있겠더라고. 저런 에펠탑이야 군대에서 만들면 그냥 바로 만들지. 아마 저거 옮기라고 하면 옮길 수도 있을걸?”

 “야! 저 콜로세움에서 옛날 군인이 짬밥 먹고 싸운 거 아니야?”

그중에 재미있는 농담도 있었지만, 대개는 공감할 수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호텔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순간까지도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끝내는 참을 수 없어서 장난식으로 내가 투정을 부렸다.

 “야! 어떻게 잠들 때까지도 군대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 내가 유럽 여행 온 건지, 아니면 군대 이야기 들으러 여행 온 건지 모르겠다. 세상에 에펠탑을 보면서 군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그만 좀 해라.”

친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야! 몇 년간 군대에 박혀 있다 나오니까 할 이야기가 이것밖에 없어. 너도 한 번 갔다 와 봐라.”

당시 미필이었던 나는 외국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군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곧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다음 날, 이탈리아에 친퀘테레라는 마을의 각 중심지를 걸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길이 험하고 날씨가 더웠다. 탈진해서 쓰러지고 구급대를 부른 미국인 관광객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평상시 가족과 등산을 많이 한 까닭에 별 어려움 없이 잘 걸었다. 하지만 친구는 시뻘게진 얼굴을 하고 헥헥거렸다. 그리고 욕을 찰지게 내뱉었다.

 “헥. 헥. 에이 xx. 여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나 죽는다. 이게 무슨 여행이야! 힘들어!”

그때 나는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친구를 골려주었다.

 “야! 군대에서는 행군 안 하냐? 군장 메고 몇 키로는 걸었을 거 아니야. 겨우 이 정도도 못 걸어? 군필자 맞아?”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군대 가서 행군은 잘하겠다.”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7개월 뒤, 나는 입대를 했다. 1년 9개월간 육군에서 성실하게 복무했다. 그리고 전역한 다음 날, 유럽 여행을 같이 갔던 그 친구와 이번에는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단체 배낭여행 형식으로 갔는데 여행 중에 어떤 남고생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학생이 숙소가 더럽다고 불평할 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야! 이렇게 후진 숙소에서 자는 것은 일도 아니야. 나는 군 생활 내내 컨테이너에서 생활했어. 게다가 마지막 호국 훈련 때는 한 달 동안 씻지도 못하고 텐트에서 지냈지. 자고 나면 천막이 얼어 있더라. 그거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야, 천국!”

같이 유럽 여행을 갔던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야 유럽 여행 갔을 때 군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강요해서 미안하다. 내가 군대 갔다 오고 나니까 네 입장 다 이해가 되더라.”

 “그렇지? 어쩔 수가 없었어.”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그 남고생에게 군대 이야기를 하며 장난을 쳤다.   


 본인이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 이후,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다툴 때 ‘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네 입장을 내가 다 미처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라고 말한다. 상대를 내 기준에 따라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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