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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등학교 선생님 Jan 09. 2021

사막의 유혹

인도   (길 위의 꿈 여행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밤하늘을 장식한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곳. 쓸쓸해 보이면서도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곳. 어린왕자가 뱀의 도움을 받아 모래언덕에서 사라지는 배경이 되는 곳. 사막에 가고 싶었다.


 어렸을 적 어린왕자 책과 여러 영화를 보고 접한 사막의 모습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법한 오아시스, 낙타를 끌고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 그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사막을 누비는 여행자가 되겠다는 꿈을 마음 한 구석에서 조심스레 담아두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일상생활에 치여 사는 어른이 되었다. 어릴 적 가졌던 사막에 대한 로망과 동경은 어느덧 기억에서 빛바래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대학에 같이 다니던 형이 내게 인도 배낭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해 왔다.

 “인도? 거기에 뭐가 있는데요?”

그동안 해외여행 경험이라고는 패키지여행이 전부였던 나에게 배낭여행은 낯설었으며, 더군다나 인도라는 나라는 더욱 생소했다. 형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인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지. 사막에 갈 수 있고, 블루 시티라는 곳도…….”

다른 설명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사막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으니까.

 “사막이요?”

 “응. 거기 자이살메르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 근처에서 1박 2일 사막 투어를 할 수 있어.”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에 품어왔던 꿈을 펼쳐볼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판단했다. 희미해져 있던 과거의 다짐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렇게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인도는 치안이 안 좋다는 말을 들어서 다른 배낭 여행자들과 함께 몰려다니기로 했다. 수도 델리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동안 길거리에서 수많은 거지들, 지저분한 소 배설물을 본 것이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여태 패키지로 편하게 다녔던 여행과는 다른 여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세 가지에 충격을 받았다. 그 중 첫째로는 일부 인도 사람들의 행태였다. 그들은 외국인들을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어떻게 해서든 바가지를 씌워 돈을 갈취하려 했다. 기념품이건, 릭샤(오토바이 택시)를 타건, 음식을 먹던 무조건 가격을 높여 불렀다. 그래서 무언가를 구매하려면 항상 흥정을 했으며, 관광지에 갈 때마다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을 뿌리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한 관광지에서 물을 살 때면 항상 페트병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던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일부 장사꾼들이 버려진 페트병에 아무 물이나 담고 관광객에게 팔기 때문이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여지없이 설사병에 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다가오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부 사람만 그랬겠지만, 그런 일을 자주 겪다보니 여행 날짜가 지날수록 내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혼돈의 길거리

 둘째로는 어디에나 널려있는 동물들이었다. 인도는 동물의 천국이었다. 이곳은 힌두교를 믿어 소를 잡아먹지 않는다. 그래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소를 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를 보는 것보다 더 흔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똥을 싸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닥을 잘 보고 걷지 않으면 낭패를 겪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소는 지나가는 사람을 괜히 들이받기도 했다. 나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소뿔에 들이받혀 팔이 푸르스름하게 멍들고 난 뒤부터, 소만 보면 길을 빙 둘러갔다. 한 번은 기차를 타려고 역 플랫폼에 갔는데, 소가 떡하니 누워서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충격적이라서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볐지만 변함없는 현실이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슬금슬금 구석진 곳으로 도망갔다.


 인도의 기차역은 대부분 원숭이 서식지라고 보면 된다. 원숭이들은 배고플 때면 사람들을 덮쳐 손에 들고 있는 먹거리를 빼앗아 갔다. 만약 굶주려 있는 상태인데 먹을 것이 보이지 않으면 휴대폰이나 모자 같은 것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사람이 먹을 것을 가져와야만 훔친 물건을 돌려주었다. 몇 몇 사람들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지만 원숭이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피했다. 결국 일행들은 굴복하여 근처 매점에 가서 바나나 같은 것을 사올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멧돼지와 호텔에 자주 출몰했던 도마뱀은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길에 돌아다니는 멧돼지, 소

 셋째로는 사람들의 위생과 안전에 대한 관념이었다. 인도 사람들이 신성시 한다는 갠지스 강이 있다. 그들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이곳에 와 시체를 태우고 남은 부분은 그냥 물에 흘려보낸다. 근처 건물에서는 똥오줌을 흘려보내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강의 다른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신성한 물이라고 목욕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옷을 빨래하기도 한다. 그들의 문화이기에 존중해야 하겠지만 나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인도에서는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위험천만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몇 몇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기 위해 기차 지붕에 매달려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호 열차 위에 매달려서 간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해마다 사망사고가 난다고 하지만 직원들이 딱히 제지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서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염려되었다.

(좌)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 맞은편에서는 시체를 태워서 버리고 있다.   /   (우) 기차 위에 올라타는 사람들


 이렇게 충격 받을 만한 환경 때문에, 인도 여행이 무르익을수록 심신은 날로 지쳐갔다. 어서 내가 꿈꿔왔던 조용한 사막에 가서 안정을 되찾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고대하던 자이살메르에 도착했다.

 자이살메르. 황금 도시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1100년대에 사람들이 사막 한가운데에 세운 도시이다. 이 곳 사람들은 낙타를 이용해 무역을 하며 도시를 번성시켰다고 하는데, 지금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낙타 투어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나도 여느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사막의 유혹에 이끌려 낙타 투어를 미리 신청한 상태였다.


 사막에 도착해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무척 행복했다.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닐 암스트롱도 이렇게 기뻤을까? 그토록 고대하던 곳에 오게 되니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금방이라도 사막 여우나 어린왕자가 튀어나와 말을 걸 것 같았다.

 우리가 탄 단봉낙타는 놀이기구처럼 위 아래로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렬로 쭉 늘어서서 가는 낙타의 행렬을 보니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인디아나 존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탐험가, 방랑자, 모험을 향해 떠나는 사람. 온갖 멋진 수식어가 머리에서 떠오르며 즐겁게 만들었다. 몸에 내리쬐는 햇볕의 열기 따위야 별 것 아니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바로 투어가 끝났다면 나는 사막에 대한 좋은 추억만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신청한 것은 1박 2일 투어였다. 몇 시간 동안 낙타를 타고 가다보니 모래 밖에 보이지 않는 주변 경치에 시들해졌고, 허리도 아파왔다. 더군다나 낙타는 걷는 동안에도 똥을 쌌는데, 앞서 가는 낙타의 배변을 바라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아, 이제 내리고 싶다.”

어찌나 지치던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진을 끊임없이 찍으며 함성을 지르던 다른 여행자들도 점차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휴식이 필요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낙타에서 내려 땅을 밟고 나니, 뱃사람이 오랜만에 육지를 밟았을 때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를 인솔했던 인도인들이 인도식 전통 카레를 준비해왔다. 무척 진이 빠진 상태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먹으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숟가락을 찾을 수 없었다.

 “숟가락은 어디 있어요?”

사막투어를 진행하는 인도인 가이드가 가방을 뒤지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없어요. 놓고 온 것 같아요. 맨 손으로 먹어야 해요.”

맙소사. 옛날 인도 사람들이 맨 손으로 식사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전통 방식으로 식사하게 될 줄이야. 요즘 인도의 웬만한 식당에는 숟가락이 다 구비되어 있다. 가끔 시장 구석진 가게에서 난(인도의 전통 빵)을 맨손으로 먹는 것을 보긴 했지만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은 카레였다. 다른 대체 음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인도인 가이드가 그것 밖에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맨손 식사를 시작했다.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쌀밥과 다르게 찰기가 없어서 한 번에 많이 집을 수도 없었거니와 카레가 뜨거워서 손을 계속 데였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래 바람까지 분 것이다.

 “아그작, 아그작.”

 밥을 씹을 때마다 모래 씹는 소리가 났다. 모래가 섞인 카레를 맨 손으로 먹으니 서러웠다. 꿈에 부풀어 머나먼 타국까지 왔는데 이렇게 거지같이 식사를 하다니. 그것도 모래 바닥에 앉아서 말이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고생만 하니 사막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퉤! 퉤!”

결국 몇 번 씹다가 먹는 것을 포기했다. 내 배를 모래로 다 채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화난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낙타가 똥을 철푸덕 철푸덕 쌌다.

 식사를 마치고 몇 시간 동안 더 이동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모래사막을 더 붉게 물들였다. 낭만적인 경치를 보니 아까 치밀어 올랐던 화가 좀 누그러들었다.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까지 보게 된다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여기가 우리 잘 곳이에요.”

갑자기 앞서가던 인도인 가이드가 멈춘 뒤 낙타에서 내렸다.

 “여기가요?”

나는 놀라며 물었다. 당연히 사막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야영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그는 답변을 하며 확인 사살 했다.

 “네, 여기서 침낭 깔고 잘 거예요.”

믿을 수가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그가 그렇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침낭을 챙겨오긴 했지만 맨바닥에서 자라고 하다니. 이게 땅거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보이겠구먼.”

괜히 투덜거렸다.

거지꼴을 하고 있다.

 짐을 내리고 침낭을 준비하는데 방광에 신호가 왔다. 아뿔싸. 아까 식사할 때 마신 물이 벌써 말썽을 부리는 것이다. 소변을 누어야 하는데 주변이 뻥 뚫려 있는 사막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는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

인도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전부 화장실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이런 곳에서 화장실을 찾은 내가 바보였다. 같이 여행 온 형은 큰 것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야영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개미 크기만큼 작아 보일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조금이나마 우리의 모습을 가릴 수 있는 사구가 보였다.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거의 다다른 순간 우리는 절망했다. 일행 중 한 여성분이 우리보다 앞서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활짝 펴진 우산을 보아하니 그 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우리는 방향을 틀어 다른 사구로 갔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오는데 몇 십 분이 걸렸다. 

 밤이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별을 볼 수 있었다. 고생하면서 온 곳이라서 그런지 그 날 따라 밤하늘이 더 예뻐 보였다. 낭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은 모래 가루처럼 처참하게 흩뿌려졌지만 별만큼은 기대했던 것보다 밝게 빛나서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었다.

 서서히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모래 바람이 불었다. 입에서 모래가 씹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모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괴로웠다. 모래는 바람을 타고 눈, 코, 귀로도 침투해 왔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바람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려 보았다. 이번에는 오리털로 된 침낭이 내 몸을 뜨겁게 만들며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고통스러웠다. 침낭을 덮자니 덥고, 덮지 않자니 모래가 온갖 구멍으로 들어왔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몸은 피곤해서 자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인데 취침을 할 수 없으니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길 빌었다.

 먼동이 텄다. 얼굴에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태로 짐을 챙겼다. 조금만 머리를 털어도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목은 바짝바짝 타서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을 수반했다. 어서 사막에서 빠져 나가고 싶었다. 그토록 사막에 오고 싶어 했던 나는, 사막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사람은 저마다 꿈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그 꿈을 이루었을 때 자신이 상상해왔던 모습과 현실의 차이가 커서 박탈감이나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딱 그 처지였다. 인도 사막 여행을 다녀왔을 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뭣 하러 그런 꿈을 꾸었을까, 왜 나는 돈 주고 생고생을 했을까, 내 평생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표현이 왜 이렇게 와 닿던지. 나는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뒤, 이런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인도 사막 여행으로 손꼽게 된 것이다. 그것도 좋은 경험으로써 말이다. 당시에는 치를 떠는 여행이었을지 몰라도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귀중한 체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생을 하고 나니 그 이후 힘든 일을 겪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사막 체험은 남들이 쉽사리 경험하지 못하는 나만의 재미있는 무용담이 되어 있었다.

 여행이 현실의 도피처 밖에 안 된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스스로 깨닫지 못하겠지만,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여행자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도 사막 여행을 다녀와서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깨달음을 얻었다. 꿈과 현실이 달라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충격의 파편은 내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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