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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Nov 23. 2024

루틴에 얽매이지 않기

보통의 글쓰기#4

"여보, 나 배고파. 밥 줘."



그 시각 오전 6시 30분. 이제 글 좀 써볼까? 생각하면서 당겨낸 의자에 막 엉덩이가 닿으려는 찰나에 뇌리에 입력된 "배고파, 밥줘" 라는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남편을 흘겨본다. 글쓰기를 하려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아침밥을 차리는 일에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돼. 여보. 이 시간은 내 시간이야. 나는 글을 쓰려고 일찍 일어났어. 이 시간은 나를 위해서 쓸거야. 조금만 기다려."

전에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럼 남편은 고맙게도 반박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고픈 배를 주려쥐고 내가 글을 충분히 쓰고 아침밥을 하는 시간이 될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글을 쓰는 아침시간도, 아침 밥을 지어내는 시간도 나에게는 다 정해져 있었다. 오래동안 해왔던 루틴이 있었고 그 루틴이 망가지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 것이 가끔은 루틴이 나를 너무 옭아매고 있지는 않나 싶어지는 요즘이다.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 하고 온 남편이 배고프다는데~~~"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남편이 전에 하지 않던 말을 한다. 100% 공감이다. 완전 항복이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다정한 모습으로 말투와 마음가짐을 고쳐낸다.

"맞아맞아~ 열심히 일하고 온 남편이 배고프다는데 밥을 먼저 줘야지~"




글쓰는 시간을 포기하고 루틴보다 조금 더 빠른 시간에 배고픈 남편을 위해서 아침밥을 짓기 시작한다. 어제 사온 호박에서 비닐을 벗겨내 차가운 물줄기에 샤워를 시켜주면서 저렴하게 구입한 호박가격이 기억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채칼로 거친 감자껍질을 벗겨내 뽀얀 속살을 드러낸 감자를 호박 옆에 두니 색대비가 선명해져서 더 먹음직스러운 식재료가 된다. 뜨거운 물에서 진액을 쏟아내며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 멸치를 건져내고 양파와 호박, 감자를 투척한다. 이제 멸치 대신 야채들이 뜨거운 물 속에서 춤 출 차례이다. 어머님께서 직접 담그신 된장을 풀어내고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마늘을 넣어준다. 다시간장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갖은 식재료에서 우러나온 국물 맛은 언제나 일품이다. 전 날 송송 썰어둔 두부와 대파, 팽이버섯을 투척해 고슬고슬한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주고 뚜껑을 닫고 불을 끈다. 뚜껑 덮은 냄비 안에서 남아있는 뜸이 부족한 음식의 맛을 채워줄 것이다.  




갓 지어낸 따뜻한 밥과 된장국 한 그릇에 남편은 마음이 흡족했을테지.


나는 오늘 내 루틴을 버리고 그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 보다 남편이 원하는 일을 먼저 해주었다는 사실에 작은 성취감과 이타적인 사랑에 취해 배가 부르다. 일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침 밥을 먼저 차려주었고 이후에 글을 써 본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이 글이다. 너무 루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얽매이는 순간, 내가 힘들어진다. 루틴은 좋은 습관이지만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풀고 조이는 열쇠도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


 

사소한 진리를 깨닫는 아주 보통의 하루, 보통의 행복이 공존하는 아침, 언제나 다름없이 보통의 글쓰기로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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