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옥천군민이다. 부산, 대전, 서울을 거쳐 2023년 2월 생에 첫 군민이 되었다. 주민등록증 뒷면 주소지에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옥천군 OO리가 찍힌 것을 보고 묘한 쾌감을 느꼈다. 기왕이면 서울에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주변의 만류, 무엇보다 지역이주에 대한 나의 두려움에 성공적으로 저항한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 있는 것도, 직장을 옮긴 것도 아니었다. 일단 지역으로 가자는 마음이 먼저였다. 일생을 대도시에서만 살았으니 한적한 지역에서도 살아보자고 생각은 했었다. 잔잔한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은 지역에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은 모두 재밌어 보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심했다. 이런 소비지상주의 시대에 저런 한적한 지역에서, 심지어는 안정적 일 없이도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결국 도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소식이 점점 많이 들렸다. 게다가 서울에서 만난 내 친구도 고향 하동으로 돌아가더니 이 일, 저 일 조금씩 하면서 사는데 만족한단다. 고지식하게 직장생활만 했던 나에겐 다소 충격이었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어디로 갈까. 전국 226개 지자체 모두가 후보지였다. 기왕 마음먹은 김에 광역시는 소심한 선택인 것 같아서 제외했다. 나름의 기준은 청년 지원사업이 많거나, 차별화된 지역 브랜드가 있거나, 접근성이 좋거나, 친구가 있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등이었다. 하동, 의성, 순천, 여수, 해남, 제천 등이 유력했다. 해당 지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뉴스를 검색하며 지역 상황을 파악했다. 몇 곳은 직접 가서 지역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충청북도 옥천군이 떠올랐다. 왜 옥천이 늦게 생각났는지 나로선 어리둥절했는데, 외갓집이 옥천이라 최근까지도 꽤 자주 오갔기 때문이다. 옥천은 인구 약 5만으로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대전 바로 옆이라 접근성도 좋고, 교통도 좋았다. 지역 주간지인 옥천신문에 주요 소식이 상세하게 실려 있어 정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민사회 활동도 활발하니 비슷한 일을 해온 나 같은 사람도 슬쩍 끼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서 이도저도 안되면 대전에 있는 가족 품으로 도망가자는 플랜 B도 가능했다. 그렇게 옥천이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