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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oraJ May 30. 2019

마당 있는 단독주택의 즐거움 3

영화 ‘리틀 포레스트’ 홀토마토 만들기

 

 단독주택 2년 차, 마당을 가꾸며 느낀 것은 마당에서 나는 채소나 허브가 생각만큼 많이 먹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키워보고 싶은 작물별로 2개에서 6개 정도의 모종만을 심었는데도 언니와 나, 그리고 친구들이 먹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단독주택 1년 차 때 흉작 속에 반짝 전성기를 누렸던 상추를 떠올려보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 삼시세끼 상추를 곁들여 먹어도 남을 정도였다. 그래서 놀러 온 친구들에게 제발 들고 가라며 한 봉지 가득 포장해주고는 했었다. 2년 차 수확에 성공한 바질도 필요한 식재료이긴 하지만 내킬 때 바로바로 조금씩 수확해서 먹으려니 신선할 때를 놓치기도 쉽고 양도 많았다. 애플 민트는 또 어떤가. 모히또를 만들거나 작은 잎 몇 개 올려 음식의 마지막 비주얼을 담당하기 위해 모종 3개를 심었는데 그럴 양은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텃밭 만들기 1년 차 때는 흉작에 마음이 쓰렸는데 2년 차 때는 남아도는 작물에 고민하고 있다니!

‘이대로만 자라 다오’를 외치던 방울토마토 유년기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자라나는 방울토마토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과이고 몇 알씩 수확해서 먹는 재미도 좋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니 먹고 싶을 때에 맞춰 순차적으로 조금씩 자라 주는 것이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 대부분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수확할 때를 놓치면 물러지거나 떨어져 곤충들의 습격을 받을 것만 같았다. 뼈아픈 흉작을 겪은 방울토마토인 만큼 한 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선 잘 익은 대부분의 방울토마토를 서둘러 수확했다. 잔뜩 따고 나니 ‘어떻게 먹지?’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 최애 영화! 나 같은 도시형 세미 귀농인(?)에게 로망을 주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홀토마토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두근두근.

 

빨갛게 담긴 홀토마토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깨끗하게 씻어 채에 받쳐 둔 후 영화의 느낌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보고 싶어서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해당 부분만 돌려 본다는 것이 어느새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봄’ 모두 정주행하고 말았다. 결국 수확한 다음날 다시 공정이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도 몸도 피곤해진다(?)


 평소 샐러드에 몇 개씩 넣어먹거나 파스타 할 때 열 개쯤 따서 반으로 잘라 소스에 넣을 때는 세상 많아 보이더니 막상 저장용을 만드려고 보니 양이 부족했다. 준비된 유리병에 가득하게 담긴 비주얼을 기대했는데 반을 조금 넘는 수확량이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마트에서 500g 3천 원 방울토마토 한 팩을 추가로 구매했다. 마트의 토마토는 한숨이 날 정도로 (싸고) 예쁘고 동글동글했다. 어지러운 마음을 고쳐 잡고 다시 만들기에 돌입했다. 하다 보니 요리 초보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공정이지만 아주아주 손이 많이 가는 인내심이 필요한 요리였다. 만들다 보니 홀토마토 통조림이 참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일일이 만들어 먹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다.


칼집 낸 토마토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바로 얼음물에 담궈 준다.
살짝 데친 토마토의 껍질은 잘 벗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잘 벗겨져도 수십 개의 토마토를 까다 보면 손마디가 뻐근해진다.
잘 벗긴 토마토를 소독한 유리병에 넣고 다시 유리병 채로 뜨거운 물에 넣고 끓여준다.
챠란~ 빨간 알맹이들이 참으로 탐스럽다.
저장 음식 삼총사. 바질 페스토, 마늘 올리브, 홀토마토

 의도치 않은 변수로 1박 2일 동안 만든 홀토마토! 유리병에 가득 담긴 모습이 보니 어찌나 뿌듯한지. 싱크대 서랍장에 가득 찬 과자를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긴 한데 그보다 좀 더 뭉클한 느낌이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만든 홀토마토를 냉장고에 차갑게 두었다가 더운 여름날 간식으로 몇 알을 꺼내먹는다. 나 역시 며칠 후 그렇게 꺼내 먹었는데 달지도 짜지도 않은 밍밍한 맛에 신선한 방울토마토의 탱글함도 없어서 평소에도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는 안 맞았다. 그보다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어 먹을 때 시판 소스와 섞어서 조리하니 풍미와 식감이 훨씬 업그레이드되었다. 시판용 토마토소스는 간편하고 맛있지만 재료가 다 갈아져 있어 그 안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워 찝찝한 부분이 있다. 다음에는 직접 양파나 버섯을 넣어 시판용 토마토소스까지 만들어봐야겠다.

냉동 피자에 바질 페스토, 홀토마토를 피처링하면 수제피자로 업그레이드된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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