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섬 Jun 27. 2024

내 사랑이 끝나고 있나요?

덕질에서의 스노우볼 효과


스노우볼 효과는 본래 경제용어로써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로 눈덩이가 비탈을 구르며 주변의 눈들을 집어삼키고 불어나듯 불리는 것을 의미한다.(출처 : 나무위키) 복리 이자를 이해할 때 쓰이는 개념으로 도입되었지만 최초의 작은 행동이 결과적으로 큰 현상을 만들어냈을 때도 사용하는 신조어이기도 하다. 나비효과와 비슷하지만 똑같은 의미는 아니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이 개념처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 3일전 버블 구독 서비스를 해제했다. 구독을 시작했을 때는 전혀 예상 못한 종말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서비스가 끝나는 건 아니고 1달이 끝나는 7월 18일까지는 멤버들의 메시지를 받고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고마워해야 하려나?


나의 덕심은 분명하게 그 온도가 떨어지고 있다. 버블이 시작되지 마자 5 인권을 구독했지만 서비스가 끝나는 7월 19일엔 1 인권 내지는 2 인권을 재구독할 예정이다. 항상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Y는 무조건 구독할 거고, 이상하게 정이 가는 B도 구독을 할까 한다. 최애는 구독하지 않을 예정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걸 보면서 과거 멤버들의 구애가 이해가 된다. '떠나지 말아 달라, 평생 함께하자' 같은 말들이었다. 그땐 저렇게 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평생 날 사랑해라' 명령해도 기꺼이 복속할 텐데 왜 저럴까 싶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가볍고 이렇게나 감정의 주기는 이리도 짧구나!


최근 내 최애 아이돌 P는 활동의 변화를 주었다. 주 2회 하던 라이브를 1회로 줄이고 1회는 보이는 라디오로 팬들의 사연을 읽어주며 나머지 1회는 올해 초 예고했던 대로 자체 컨텐츠로 미리 촬영해 둔 영상을 업로드한다. (보이는) 라디오 - 자컨 - 라이브 순이다.


이 3종의 콘텐츠는 모두 2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라이브나 공개되는 시간 2시간을 넘게 통으로 비워두는 일이 전에도 말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양육자이자 살림꾼의 저녁시간이 얼마나 바쁜지 아시는지. P의 활동에 변화가 생기고부터 이걸 챙기지 못했다. 영상 챙겨보기가 한 번 밀리니 두 번, 세 번 밀리는 건 쉬웠다.


많이 밀리니 처음부터 챙겨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상을 못 보니 영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버블 메시지까지 못 보고 있다. 메시지 알람이 2~3일만 지나도 금세 세 자리를 훌쩍 넘는다. 덕질 시작 후 과거 라이브 영상 모두 정주행 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어제나 저제나 하다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다 정말 P와 멀어지겠구나' 싶은 마음과 배신한 것 같아 미안함이 찌꺼기처럼 마음 안에 있었다. 못 본 거 다 보고 시작하려다간 이대로 덕질이 끝나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이번 주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일부러 시간을 짜냈다. 그런데 아직껏 월요일 보라를 다 보지 못했다. 그러는 새 자컨도 공개됐고 오늘은 라이브도 계획되어 있는데...


지난주 스터디카페에서 에어팟을 꽂고 있었다. 재생 음악은 유튜브의 신상 음악들? 제때 새 곡을 재생하지 못했더니 유튭이 이런 노래 좋아하지? 하면서 멋대로 음악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P의 노래가 없을 리가! 그들의 타이틀곡도 아니고 커버곡이었는데도, 그곳에서 내 최애의 목소리와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이란.


코뼈 언저리로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드세지는 콧김을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올라가 얼굴을 덮었다. 아직 공격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듯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음에 왠지 눈가가 촉촉해지고 심장 어딘가가 미어지더니 이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이 남자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졌었지. 그리고 그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맞닥뜨린 감정의 쓰나미에 나는 맥없이 흔들렸다. 버추얼 아이돌이라서 이렇듯 목소리, 그러니까 가수의 본질에 대해 예민할 수 있는 걸까?


이 매거진의 끝은 탈덕일 수도 있겠으나 아니 그럴 확률이 매우 높겠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내 애정을 지켜보는 걸로도 이 기록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스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