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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Jul 28. 2022

누구를 위한 개인정보 & 본인 인증이지?

D-4

아직 출국까지는 4일이 남았지만 평일은 이제 오늘과 내일, 이틀뿐이다. 관공서 일을 볼 수 있는 날은 이 이틀이 전부다. 오늘 오전엔 은행 업무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떠나 5~6년을 외국에 있어야 하기에 각종 보험이나 적금 등 월납입을 하고 있는 상품들은 이미 온라인으로 모두 해지했다. 완전 한국 계좌들을 없애고 가는 것은 아니어서 크게 부담은 없지만 그래도 고정 지출이 있는 건 부담스럽다. 국내에서 수입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미국에선 아직까지 한국보단 현금을 많이 쓰는 편이어서 환전도 해야 했다. 첨엔 아무것도 모르고 십 년 전에 처음 유학 갈 때처럼 여행자 수표로 최대 소지금액에 맞춰 환전하려고 했는데, 재작년에 여행자 수표가 발행 중단됐단다.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급감이 원인이란다. 여행자 수표는 고액권이 있어 적은 부피로 큰돈을 소지할 수 있지만, 현금은 100불이 가장 큰 단위다 보니, 수천 불을 환전하면 완전 돈다발이다. 원래 소지하기로 했던 금액보다 절반에 가까운 금액만 가져가기로 하고 환전을 했다.


오랜만의 은행 방문에서 재밌었던 건, 은행 창구에서 본인 인증을 더 힘들게 한다는 점이었다. 실물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고, 본인이 직원 앞에 앉아 있음에도 본인 인증을 위한 바이오 인증(정맥?!?!) 등의 추가 인증을 요구한다는 점이 기가 막혔다. 본인 자체가 어쩌면 가장 확실한 인증이고 나머지 인증 방법은 본인을 확인할 수 없기에 보조적으로 인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왠지 주객이 전도된 이 느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온라인 및 모바일 뱅킹 상용화로 각종 기술을 통해 온라인 상에서는 본인 인증이 매우 쉽고, 정작 은행 창구에서는 당사자가 앞에 있어도 본인 인증이 더 복잡하고 많은 서류 작업을 요구하는 아이러니함이 실소를 나게 한다.


한 시간 반여 만에 환전을 마치고 (! 정말 환전만 했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알뜰폰 최저요금제로 변경했다.


해외에서 국내 은행이나 관공서 업무를 원활하게 보기 위해서는 국내 휴대전화 번호를 유지해야만 한다. 거의 유일한 본인 인증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수 차례의 본인 인증 때문에 애를 먹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을 하는데, 휴대전화를 바꾸는 절차를 하다 보니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한 인증이 아닌 다른 인증을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안정성이 떨어진다. 해외에서의 원활한 본인 인증을 위해 휴대전화를 개통하면서 본인 인증을 하다가 열이 받는… 그냥 해피콜로 개통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긴 했지만, 그래도 30여 분만에 마치긴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는 내가 은행에 가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문화상품권 5,000원을 온라인 사용하기 위해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개인 정보를 요구하고, 어처구니없이 그 개인 정보를 이용해 원하지 않는 부가 서비스를 자동 신청하고, 내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부가서비스를 해지하려고 했더니 다시 또 다른 개인 정보를 요구했단다. 그 정보들을 모두 조합하면 다시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는 그런 환장의 조합.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니 또 다른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이게 정말 맞는 거니?


어쩌면 대한민국 온라인/모바일 생활의 편리함에는 수도 없는 개인 정보를 반강제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 인증 절차를 감당하는 희생이 녹아있지 않은가 싶다. 물론, 이제 미국에 가면 이런 불평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거쳐야만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압축된 여러 행정 업무를 거치다 보니 약간만 막혀도 꽤나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한국에서의 하루를 지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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