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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Aug 05. 2022

바쁘다 바빠. 정착은 힘들어

D+2 (aug. 3rd 2022)

나와 아내는 진한 여독에 밤새 곯아떨어졌지만 딸아이는 어제 오후  시에 잠이 들어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버렸다. 그럼에도 나와 아내는 그렇게 시차 적응에 실패한 아이를 돌볼 정신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것을 의식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저 잠에서   없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혼자서 이리저리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홀로 보내 주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게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기도 했다. 이쁜 . 괜히 밤새 홀로 시간을 보냈을 딸아이 때문에 코가 시큰해진다. 


아침부터 할 일은 또 너무나 많았다. 많지는 않지만 현금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고, 또 계속 한국 카드와 통장의 돈을 쓸 수 없는 우리로선 현지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서 온 가족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국구 은행으로 계좌를 개설하러 갔다.


며칠 전 한국에 있을 때 글에서 은행이 오래 걸리니, 개인 인증이 어쩌니 했지만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긴 시골(?) 은행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 그냥 오래 걸린다. 우리의 계좌 개설을 안내하는 직원은 말투나 표정이나 생김새가 넷플릭스 드라마, ‘키미 슈미츠’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았다. 심지어 그 이해할 수 없는 텐션까지도. 나무 친절해서 고맙고 잘 도와주었지만, 조금씩 지쳐가기까지 했다. 아내와 나 모두 무사히 체킹 어카운트(일반 입출금 통장)와 세이빙 어카운트(저축 통장)를 하나씩 만들고, 사회보장 번호가 있었던 나는 크레디트 카드 만들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조금 더 신용을 쌓은 뒤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고 은행을 나섰다.


은행에서의 긴 기다림 때문에 지쳐가는 아이를 위해 점심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먹기로 했다. 아이는 아웃백이 가고 싶단다. 응? 오다가다 아웃백을 봤는데 그 아웃백에서 밥을 먹고 싶다는 것. 살짝 겁이 났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샌프란에서 물가 때문에 약간 걱정이 되었었는데, 아웃백은 미국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채는 아이를 위해 과감히 가기로 하고 아웃백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점심 장사는 하지 않는단다.


이번 주말에 다시 오기로 하고 입이 잔뜩 나온 아이를 달래서 다른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하다가, 팬케이크 집이 떠올랐다. 우리도 유학 시절 좋았던 추억이 있고 팬케이크라면 아이도 좋아할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메뉴판을 보더니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키즈 메뉴에서 스모어 토핑 팬케이크를 보고는 자신이 직접 (영어로) 주문까지 하겠단다. 멋지게 영어 주문도 성공하고 맛있게 팬케이크를 먹는다. 너무 만족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뿌듯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여기의 것을 하나 찾아준 느낌이다.


오후에는 어제 미쳐 까먹거나 새로 필요해진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타깃’을 다시 한번 들렀다. 타깃은 그야말로 생활 영품이 없는 것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가격을 확인하다 보니 물건이 질이 많이 좋지도 않고, 또 가격이 많이 싼 편도 아니다. 그저 다 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사다 보면 금세 삼사백 불을 쓰게 된다. 오늘도 역시 그 정도 금액을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있는  워낙 없다 보니 쇼핑을 하고 돌아와도 비는  너무나 많다. 샤워 커튼을 샀는데 커튼 링이 없거, 프린터를 샀는데 종이가 없다. 이런 식이다. 오늘 급하게 서류 작업해야  것이 있어서 종이는  필요했던지라, 집에서 가까운 CVS(약국 편의점) 가서 종이를  왔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다.


그리고 아내와 전기 회사에 보낼 신청서를 노터리(공증) 받기 위해 은행에 다시 한번 들렀다. 노터리는 우리나라에선 잘 없는 과정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공증인은 ‘사인의 본인이 이 서류에 사인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이런 뜻이다. 즉 서류에 사인하는 게 본인인지 알 수 없으니 옆에서 자격 있는 사람이 봐라 이런 거다. 우리나라에선 인감 증명이 하는 역할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뭐 하여간 공증인도 나도 왜 전기회서에서 공증을 받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한 이십여 분만에 공증을 끝냈다.


마침내 오늘 해야 할 일차 목표를 달성하고 간단히 저녁을 때운 뒤 (아무리 물건을 사도 도저히 요리할 형편은 안 된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영사관 방문 예약을 잡으려 했는데, 이게 날 미치게 만들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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