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다쟁이 Nov 30. 2021

나의 연인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게. 바로 너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지. 2001 11 29. 20  저녁을 먹다가 내가 먼저 사귀자고 말을 꺼냈을  얼굴이 빨개진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대답했지. 대학 때부터  눈에 띄는 후배였어. 모든 모임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시간 약속도 철저히 지키던 모범생이었지. 수련회 아침 구보 때도  일찍 나와  앞줄에서 예비역들과 달리던 모습은 잊을  없어. 그래서 여자 예비역으로 불렸던  너도 기억나지? 너의 성실함이 좋았어. 믿음직하고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똥 손이던 나는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늘 부러워했어. 큰 행사를 앞둔 어느 날 모임이 있어 사무실에 갔을 때 데코레이션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그리고 자르고 풀칠하고 있더라. 네 옆을 지나면서 힐끔힐끔 널 쳐다봤어. 세상에나. 어쩜 그렇게 예쁘게 만들던지. 거기 있던 사람들 가운데 너의 솜씨는 단연 으뜸이었어. 이상하더라. 안쪽 방에서 모임을 하면서도 자꾸 네게 시선이 쏠리더라.


대화를 나눌 때면 너는 온몸으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반응해 줬어. 적절한 고갯짓, 공감하는 표정, 과하지 않은 추임새에 가뜩이나 말하기 좋아하는 나는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었지. 너랑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어.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도 널 귀명창이라고 부르나 봐.


함께 간사 시험을 보고, 신입 훈련을 받으면서 우린 더 나눌 이야기가 많아졌지. 강의에 대한 소감, 훈련 중 느낀 어려움을 언제든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라 좋았어. 훈련을 마치고 캠퍼스로 돌아왔을 때 간사로 사역하는 널 보며 입이 떡 벌어졌어. 학생들을 대하는 인격적인 태도, 긍휼의 마음, 강의와 설교, 기도회와 찬양 인도, 상담 등 어느 것 하나 모자란 것이 없어 보였거든. 그런 네가 멋졌고 부럽기까지 했단다. 널 향한 내 존경심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천천히 가까워진 너와 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고, 우정이라 말하기엔 너무 친밀했던 우리에게 남은 건 연애뿐. 널 만난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오늘 좀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라. 고백하던 날 두근거림과 연애할 때 설렘이 떠올랐던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여서 참 좋아. 너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어. 그런 널 만난 오늘이 그래서 특별해. 20년 전에도 지금도 언제나 난 너의 연인.


우리 사귀기 시작한 지 7,300일 되는 날에 널 사랑하는 내가.

작가의 이전글 어제와 오늘 사이의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