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들이 마시고 후-, 내뱉으면서 배에 힘주고 그대로 업!” 오늘은 허리 치료를 위해 척추운동센터에 다녀왔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허리 근육 강화 운동을 배우는 중인데 어려운 동작이 아닌데도 따라 하기가 만만치 않다. “지금 몸이 전체적으로 너무 딱딱하세요.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더 굳으니까 스트레칭을 자주 하셔서 풀어 주셔야 해요.”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한때는 ‘춤의 왕’이라 불리던 유연했던 몸인데 어쩌다 이렇게 뻣뻣한 막대기가 되었단 말인가. 과거의 날렵한 몸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이대로 더 굳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운동을 꾸준히 할 수밖에. 나이가 들수록 굳어지는 게 과연 몸뿐일까.
‘쇼미 더 머니’에 나오는 ‘머드 더 스튜던트’에 빠져 있는 딸이 며칠 전 내게 물었다. “아빠, 이 음악 좀 들어봐. 너무 좋지 않아.”, “글쎄. 난 잘 모르겠네. 요즘 노래 가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돼.” 이렇게 말해놓고도 속으로는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뭐 좋기만 하고만” 대답하고는 딸은 쀼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냥 좋다고 말할 걸.’ 속에만 감춰뒀어야 할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걸 후회했다. 청소년기에 내가 즐겨 듣던 록 음악을 주위 어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요즘 애들 음악은 왜 이렇게 시끄럽고 정신없냐.” 그럴 때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다며 손가락질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 손가락질받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배워온 것들이 있다. 생을 통과하며 습득한 노하우와 관점이랄까. 누적된 인생의 경험은 나만의 알고리즘을 생성했다. 학업과 진로, 연애와 결혼,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의 방식을 터득했고, 20년 넘게 기독교 세계에 몸담고 산 덕에 신앙, 교회, 사역, 경건, 영성 등의 종교적 영역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나의 배움과 지식, 경험이 나를 더 유연하게 하기는커녕 딱딱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 방식과 다른 경우를 볼 때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해 열린 태도보다 거부감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이미 배운 것들로도 큰 불편함이 없으니 더 배우려고 하지 않거나, 설사 배운다 해도 확증편향적인 공부인 경우가 많다. 오래된 것이 익숙하고, 익숙한 것은 편안한 것이 되다 보니 새 것과 낯선 것은 불편한 것이 되었다.
리처드 로어는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인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늘에 감춰져 있는 근원적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지우는 작업이다. 그렇다. 변화는 배움보다 배운 것을 지움에 더 많이 연관된 것이다.”
많이 배워야 변화되고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배운 것을 지우고 버려야 변화와 성숙이 가능하단다. 한정된 메모리에 새로 저장하려면 이미 있던 것들을 지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업데이트를 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에 붙들려 있으면 마음은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낡은 가죽 부대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인생의 전반부는 얻고, 채우고, 쓰는 일을 위해 힘썼다면 후반부는 버리고, 비우고, 지우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해본다.
나의 알고리즘을 해체하는 작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동안 배우고 알아왔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 이것이 이제 나의 ‘알고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