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문예창작과에서 3년제 컴퓨터정보과로, 그 이후의 삶
X에서 코딩 해외취업 관련된 얘기가 많이 보여서 쓰는 글.
스물셋, 당시의 나는 외부의 기준을 많이 따르고 있었다. 계속 문학을 공부하는 게 쓸모가 있을까? 돈이 될까? 이런 생각이 잦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탈조에 관한 막연한 환상도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떠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한 것. 일단 기술을 배우자. 그리고 나가자. 수학은 못해, 나는 뼛속까지 문과야. 학창 시절 이런 생각에 갇혀있는 내가 싫어서 아예 정반대의 컴퓨터 관련 학과를 택했다. 해외 취업을 하기에 용이하다는 얘기도 있었고. 7월 말부터 뒤늦게 반수에 돌입했다. 편입을 하기에는 학점이 엉망이었다. 고등학생 때 실기에만 매달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 술과 담배에 익숙해진 뇌로 공부하긴 쉽지 않았다. 예상보다 못한 대학에 진학했지만 걱정보단 설렘이 컸다.
막상 공부를 하고 보니 개발 언어는 어려웠다. 파이썬 기초는 그럭저럭 흥미를 붙였지만 어떻게 응용이 되는지 아예 감이 잡히지 않았고, C언어는 초반부터 헬이었고, JAVA는 아예 포기. 이과 교수들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왜 자퇴생이 많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상대적으로 EQ 능력 떨어지는 인간이 많다) 자주 자퇴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는데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졸업할 수 있었다. 개발자의 길은 도저히 아닌 것 같고, 엑셀이나 회계 쪽도 따분하다고 느끼던 중 UX/UI 수업을 만났다. 생각보다 적성에 맞을뿐더러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도 꽤 괜찮은 작업물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진로를 이쪽으로 잡고 취업했다. 웹디자이너는 연봉 테이블이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개발 쪽으로 전향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래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퇴직한 아빠는 IT 직군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는데, 개발 쪽 일을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 (물론 디자인도!)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한 분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로 교체되거나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경험에서 우러난 얘기를 했다. 계속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선 그 분야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적성도 잘 맞아야 한다. 특히 개발 쪽은 적성을 많이 탄다. 문과에서 개발자 전향도 많이 봤지만 컴퓨터정보과에서 적응하지 못한 케이스도 많았다. 나 같은 경우 학과에서 공부하면서 개발 언어에 아예 학을 뗐고(ㅎㅎ), UI디자인 레퍼런스를 찾아보거나 공부하는 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도 경험해 봐야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비 학원은 퀄리티가 안 좋다는 얘기가 있지만(비전공자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국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개인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분야기 때문에, 선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얼마나 포트폴리오를 쌓는 지다.
최근 면접을 다니면서 느끼는 건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다면 컴퓨터 쪽을 전공하는 것도 괜찮긴 하다. 나는 기본적인 퍼블리싱은 할 줄 아는데(html/css, 아주 약간의 JavaScript)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내가 코딩을 잘할 거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쇼핑몰 보수가 주요 업무인 웹디보다야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html/css는 비교적 할 만하다! 정말로! 의외였던 건 문예창작과라는 학과를 처음 들어봐서 뭐하는 데냐고 물어보는 곳도 종종 있었다. 요즘 취업난이라는데 면접은 꾸준하게 다니고 있다. 따로 스펙 쌓은 건 없고요, 포트폴리오만 있습니다.
나는 직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력서 지원하는 회사의 산업군은 다양한 편이다. 확실히 출판, 서점 쪽은 연봉이 너무 짜다... 만약에 내가 문창과를 졸업해서 전공을 최대한 살리고 관심 분야로 갔다면 돈에 관해서 아예 해탈하며 살았을 것이다... (전공 살리는 거 필수는 아닌데 이상하게 나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좀 컸다) 웹디 연봉도 많지 않은 편인데도 말야! 최근 모 기업의 초봉을 찾아보다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말만 대기업이지 연봉이 웬만한 중소기업급이다.
솔직히 내가 컴정과에 입학한 건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이 상당히 컸지만(ㅋㅋ) 그래도 웹디자인을 신입치곤 잘하는 것 같고 흥미도 있어서 그럭저럭 만족한다. 40대, 50대에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첫 회사는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좀 빡세게 하면서 포폴 쌓았고... 요즘엔 안정적인 인하우스에 들어가서 오래 있고 싶은 마음!
웹디자인보다는 UX기획에 가까운 디자인이 연봉이 좀 더 높은 편이고... 웹디자인도 종류가 많고... 아예 기획자를 할 수도 있고... 퍼블리셔를 하다가 개발자가 되는 케이스... 네트워크 관리사 쪽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고... 공부해 보면서 나에게 더 잘 맞는 게 뭔지 깨달을 수 있는 거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그래도 모두 다 갖고 있어서 경쟁력 없는 자격증 쌓기보단 나의 강점을 살린 명확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게 취업 시장에서 더 도움된다는 게 나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