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는 만들 수 없다
잘 쓴 글은 무엇일까? 확실한 건 잘 썼다고 잘 팔리는 것 같진 않다... 사실 나는 아주 최악이 아니라면 글의 완성도는 별로 따지지 않는다. 주제나 의미를 찾는 건 평론가들이나 하는 짓이고... 나는 체험적 측면에서의 독서를 좋아한다. 내가 잘 쓴 글이라고 느끼는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이건 확실하다. 문장을 읽는데 작가의 목소리가 들릴 때.
글의 장르를 떠나서, 개인의 호오를 떠나서. 그런 경험을 할 때 감탄하기도, 살짝 웃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다. 한강, 김사과, 배수아, 김영하, 김연수... 무라타 사야카(요즘 저의 최애 작가>"<)... 책만 읽다가 우연히 인터뷰를 접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하나 같이 자기 글처럼 말하는 구만... 아니 자기가 말하는 대로 쓰는 건가...?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을 쓴다는 거다. 안녕 철수야. 나는 영희야. 이런 식으로 뻣뻣하게 편지를 쓰거나. 고등학생인데 교과서에서 볼 법한 70년대식으로 소설을 쓰는 식으로...(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너의 글에는 분위기가 있어. 처음에는 그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부분 때문에 분위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되게 있어 보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 분위기 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문체가 좋다는 작가들의 책만 열심히 파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까 알았다. 분위기 있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지적이기도 했다.
내가 글을 보여주길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삶을 대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배어 있었다. 나는 힘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도 나는 본질을 회피했다. 직접적 언급을 피하고 어느 한 장면으로 보여주려고만 했다. 초반에는 칭찬도 곧잘 받아서 나는 이게 예술이고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추상적으로만 흘러버리는 글은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뭣도 아니었다.
요즘은 글을 쓸 때 문체 같은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쓴다. 고려하는 건 깔끔하고 구체적인, 가독성 좋은 문장 정도? 문체는 내가 의도한다고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일까? 의문이 들었다. 평소 나의 성격, 취향, 리듬...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스타일이 녹아있는 게 문체라는 거니까... 물론 나에게 더 편한 호흡은 분명 있지만...
계속 퇴고를 하면서 지겹도록 보는 게 내 문장이라서. 나는 내 글에 객관적인 감상을 가질 수가 없다. (20대 초반에는 쓰레기를 쓰고 있단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