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문학 (1)

by 해일

그때 나는 역사(驛舍)를 빠져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다. 사람들은 멀뚱멀뚱 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뛰었다. 있는 힘껏.


복도에 웅덩이가 생겼다. 머지않아 얼룩이 될 것이다. 아침이면 지워질. 거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빛이 사라졌다. 불쑥 나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이대로는 안 돼. 문이 열렸고, 개가 짖었다.


다음 날 곧바로 퇴사했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그 정도의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사를 했다.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 순조롭게.


일조량은 부족하다.


일단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방에 관한 것이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텔레비전, 옷장, 책상, 이렇게 옵션 가구. 내가 가져온 것이라고는 슈퍼 싱글 사이즈의 침대뿐이었다. 방이 꽉 찼다. 남는 공간에는 한 사람도 누울 수 없었다. 하지만 원래 사용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적금을 깼다.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적었다. 만기는 30년.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까? 미래를 대비하여 모았지만. 나는 미래를 모른다. 다소 충동적인 결정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버렸다. 그러니 이제 정말 해야 할 것을 해야 했다.


나는 글을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이다.


만약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2015년에는 눈이 온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매일 공원에서 달렸다, 연락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정시에는 여섯 개의 실기 시험을 봤다. 수시까지 합친다면 총 열두 개. 그동안 나는 살이 많이 쪘다. 일단은 다이어트를 하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솔직히 다음은 몰랐다. 오직 문예창작과에 가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그 자리가 지워졌다. 텅 빈 머리로 일단 뛰었다. 경로를 방해하는 건 인간이었다. 특히 늙고 지친. 어떻게든 움직여서 살아있음을 느껴야만 하는. 한 인간은 아주 느린 속도로 걸었다. 한 인간은 나를 바라보며 걸었다. 앞을 보지 않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제쳤다.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학과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면서, 종종 무언가를 쓰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주 후 일주일은 잠만 잤다. 나는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만끽했다. 이것만이 오로지 나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손이 저렸다. 긴장은 서서히 풀어졌다.


낮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밤이 좋은 이유는 모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켠다. 한글 2002 프로그램을 실행 후 폰트를 고른다. 신명조, 바탕체, 돋움체… 결국 디폴트 값인 함초롱바탕으로 돌아온다. 한참 커서가 제자리에서 깜빡거렸다.


쓰지 않을 때는 쓰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글자로 표현되지 않은 느낌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고 압도당할 때도 수두룩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대단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를 마주 보는 건 좀 다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하지만 안 된다고 결정짓고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막상 쓰기 시작하자 나는 자주 샛길로 빠졌다. 이것도 작품을 쓰기 위한 정보 조사의 일환 아닐까? 방에서도 충분히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 옛날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문장 하나 남기지 못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