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 자크 루소는 산책 애호가였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작가가 산책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나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밖에 나갔다. 문을 열자 공기가 눅눅했다. 8월의 새벽. 해가 뜨기 직전은 차갑다. 나는 동네를 가볍게 한 바퀴 돌 작정이었지만 처음부터 오르막을 마주했다. 땀이 났다. 끈적했다. 글감이라든지 영감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실체가 확실한 것들을 곱씹었다. 이를테면 숫자의 변화가 명확한 계좌라든지. 1쪽도 채우지 못한 페이지라든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씩 쓴다는 데 말이지. 물론 나는 그의 책을 싫어하지만. 문득 뒤를 돌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원룸 빌라들. 창문, 문, 벽돌, 사각과 사변을 잃지 않은 규격을 충족하는 사각형이 무수하다. 너무 안정적인 구조라 어떤 재해에도 살아남을 것 같다.
올라오면 내려가야 한다.
가팔랐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줬다.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만드는 바람에 땀이 말랐다.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존재했다. 간판이 부서진 슈퍼. 탁상 위 중단된 바둑. 호구에 들어선 백돌. 아스팔트를 침범한 벚나무. 얼핏 봐도 몇백 년은 살았을 것이다. 무성한 가지를 따라 고개를 올렸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두 발이 반짝였다.
어떻게 저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
나는 작게 탄성했다. 그녀는 노끈으로 목을 감아 나뭇가지와 연결된 상태였다. 평온하게 눈을 감고. 흰 천이 흩날렸다. 그때 방울을 맞았다. 조금은 뜨겁고 끈적한. 피였다. 그제야 나는 진작 해야 했을 생각을 했다. 그녀를, 구해야 한다. 담을 올랐다. 까치발을 들고 팔을 뻗었다. 간신히 그녀의 다리에 닿을 수 있었다. 부드러웠다. 발목을 움켜잡고 끌어당겼다. 나무는 버텼다. 그녀의 얼굴이 검붉게 일그러졌다. 나는 온 힘을 줬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라면? 내가 지금 살리겠다는 명목하에 그녀를 죽이고 있는 거라면? 그때 균형을 잃었다. 발이 잠시 허공을 방황했고 나는 그녀를 더 꽉 잡았다.
우리는 함께 떨어졌다.
내가 그녀를 집에 데려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티슈로 그녀의 이물질을 닦았다. 이불을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몸에 어떤 상처도 없었다. 목을 제외하면. 끈이 있던 자리에 크고 노란 멍이 졌다. 내가 만들어버린.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 그녀의 미간이 수축했다. 소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