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1년 마무리 행사가 많다. 현역도 아닌데 불러주니 고맙고, 한편으론 지혜로이 알아서 주소록을 줄일 필요성을 느낀다.
최근 가장 큰 행사 알림을 받았다. 나는 손님으로 가다가 올해부터 행사진행팀 멤버가 되었다. 노령사회임을 확인할 수 있게 60대인 내 나이가 젊은(?) 편에 속하나 보다. 쌓은 공든 탑도 없이 여성이 워낙 없는 이곳에 격려 겸 깍두기로 끼워진 걸로 짐작된다.
전국에서 230여 명이 참석하는 송년회 개최를 위해 주최 측은 3개월도 전부터 시간을 조절하고 내외빈 초청 대상을 정했다. 그리고 80세로 현직에 계신 대표님은 직접 현장과 동선 확인 등을 진두지휘하셨다. 참석 내외빈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송년 행사가 되도록 20명의 행사준비팀과 3차례에 걸쳐 리허설 수준의 점검이 이어졌다.
행사주최 측은 연말 송년의 대형 행사를 위해 시간과 비용도 적지 않게 들였다. 여러 차례 아이디어를 내고 첨삭하고 내외빈 이동 동선을 확인하고, 안내 입간판들을 주문하고, 팸플릿과 안내장들, 행사장 안내와 행사장 내 벽에 붙일 플래카드, 테이블별로 혹여 실수 없도록 좌석 배치에 기념품 전달 시간과 방법까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현장 사진이 카톡으로 전송되었다. 핵심위원들의 고생이 짐작도 할 수 없게 많았나 보다.
대형 참치 해체쇼를 준비한 전문 요리사는 전날 참치와 큰 칼세트를 행사준비 컨벤션 센터로 이동했다. 또 성악가와 반주팀, 국악팀, 그리고 공연팀도 전날 재확인하고, 지방공연 중인 팀은 시간을 잘 지키기 위해 전날 숙소에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나는 외빈 안내 임무를 맡고 처음 참여하는 대형 행사였다. 나도 덩달아 효율적인 동선을 그렸다.
오, 늦은 밤 계엄선포 소식이 울려 퍼졌다. 2024년 12월 가라앉은 경제상태에서 5.18을 연상케 하는 계엄이라니...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우고 서로 소식을 확인하고 중심을 잡느라 핸드폰이 불이 날 지경이었다. 비상 뉴스가 침실의 TV 화면을 밤새워 메웠다.
새벽에 계엄해제가 알려졌다. 그러나 그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송년회에 참석예정 국회의원들과 기업인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음은 확실해 보였다. 비상이 된 시국에 축제의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할 일은 아니라서 비록 다음날 일이지만 의견 교환이 필요했다. 급히 연락망과 카톡메시지로 아직 미결인 행사상황을 긴급공지로 나누어서 알렸다.
다시 준비팀이 모여서 애꿎은 커피만 마시며 생각을 모았다. 핵심 멤버들은 밤을 새워 의논하며 대기했다고. 평생을 정부행사 준비 관련 업무를 하고 막 은퇴한 멤버가 호텔의 연회 준비팀에 상의를 했다.
행사취소로 인해 발생된 위약금은 총비용의 50%라고. 당연하다. 그들은 이미 260명 분의 신선한 재료들을 준비했는데 천재지변이 아닌 사건(?)으로 손실이 발생했으니 50% 배상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 우린 또 뭔가? 결국 추가 지불 없이 기존의 계약금만 떼이는 걸로 조율되었지만 우리도 컨벤션센터도 적지 않은 금전적 피해를 보았다. 결국 2024년의 12월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모양새다.
주요 행사들과 참석자들의 일정조절이 쉽지 않아 송년행사는 없었던 일이 되어 이미 도착한 각종 행사물품은 사무실 빈 공간에 높이 쌓였다. 날짜가 쓰여있으니 팸플릿 등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주요 인사들과 통화 후 신년인사로 대체하기로 하고 행사자체를 2월쯤으로 미루었다. 2024년은 12월까지 참 버라이어티하다.
물론 군이 민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총기사고가 없이 막을 내린 계엄선포 사건(?)은 천만다행이다. 놀람의 여진은 있지만 순식간에 계엄군경을 상대로 목숨을 내걸고 모여든 시민들과 여러 역할자들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
한 여름밤의 악몽을 꾼 느낌이다. 어두운 밤 여의도와 용산 행렬에 참여한 회원들이 사진을 보내왔다. 늙은 시민인 옆지기도 그의 지인들도 추운 밤시간에 여의도에 있을 것이다. 화장실을 매시간 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집에서 TV를 켜서 여의도를 본다.
국내에서 이번 사건으로 난감하게 된 송년행사가 한 둘이겠는가? 오늘 용산과 동대문 사무실 미팅 후 귀갓길은 지하철노조 파업까지 겹쳐 영양가 없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었다.
1시간 동안 지상선로와 눈 맞춤인 탑승객들에게 지하철 역사 진입 소식 대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수리 중이니 계단을 이용하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추위가 매서운 지상노선에 선 채 떨었다. 아, 정말 어쩌란 말인가?
오전 9시에 임금 상승문제가 타결되었다더니 오후 6시에도 파업 중이란다. 지상철 역사에서 오지 않는 지하철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선 시민들 입장을 짐작은 할까?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와 파업 안내방송의 1시간째 무한반복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지하철 적자가 약자 무임승차 때문이라고? 약자들이 안 타면 지하철 길이가 짧아져서 전력절감이 되니 흑자가 된다는 건가? 왜 매년 반복되는 이들의 주장에 애먼 시민들이 귀갓길 추위에 오들대며 매 맞으라는 건가? 버스로 갈 수 없는 곳이라 지하철을 기다리며 지하철 노조들의 다양한 주장에 대해 내 마음은 공감 0이 되었다. 그들의 배변도 어려운 근무조건은 당연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국 임금인상에 합의하고 만 타결은 씁쓸하다.
1시간 만에 온 지하철은 콩나물시루였다. 하나를 보내고 승차한 다음 지하철 역시 기다렸던 사람들이 많아 점점 이태원사고가 생각나게 밀려들어왔다. 이렇게 호흡곤란이 오나 보다 했다.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말도 오늘은 참 멋쩍다. 내일은 보다 맑은 하늘이길...
아, 큰 남자들 틈에 끼여 힘들던 나를 위해 힘껏 버텨서 숨을 쉴 수 있게 틈을 만들어 준 젊은 군인아저씨(?)께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