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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머, 이 남자도 은행잎을

문득 초겨울을 보여준 남자들

by 윤혜경


읽기 도우미견 (Reading to Dogs)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리딩독연구소> 설립과 발전에 재능기부로 도움을 주는 분들과의 미팅을 위해 동창회 사무실에 자주 가게 된다.


재능기부로 봉사가 몸에 밴 은퇴자이자 훨훨 나는 개인사업자인 사무총장은 동창회일에도 자원봉사로 열일 중이다. 나이가 있는데 도우미 없이 컴퓨터 사용도 능숙하다, 부러울 만큼.


내게 리딩독문해 프로그램과 관련한 로고 사용을 허락해 준 미국 리딩독 최대 기관의 홈피에 드디어 우리 태극기가 올려져 있다. 그 페이지를 사무총장은 금세 카피해서 복사해 준다.


태극기가 다른 25개국과 나란히 등장한 자료를 건네받고 여러 생각을 하며 돌아서는데 언뜻 노랑 은행잎들이 스친다. 다시 보니 스카치테이프로 유리창에 붙여져 있다.


"어머, 낙엽을 주우셨네요. "

"네, 저도 초겨울을 느껴봅니다. "


워낙 일이 빠르고 직선적 표현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 멈춰 서서 낙엽을 주워드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귀가해서 남편 서재에 들어가니 뚜껑 덮인 피아노 위에 은행잎들이 놓여있다.


* 초겨울 맨드라미


직선적인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서정적이 되는 건가? 나는 다니는 병원 앞의 맨드라미가 초겨울을 겪는 걸 보며 마음이 애잔해서 잠깐 멈췄을 뿐이다.

나는 올 가을에 은행잎을 줍지 않았다. 아마도 못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가을잎을 초겨울에 주워 든 남자들이라니.


내가 너무 달렸나 보다, 도로 바닥에 누운 은행잎에 시선도 두지 않고. 아, 이미 책 속에 들어있는 잘 마른 나뭇잎을 코팅해서 책갈피로 선물해야겠다.


(사진출처: 코미디닷컴)



남자들이 노란 은행잎을 주워 들어 유리창에 붙이는 계절에 나는 동쪽과 서쪽 도시로 달리느라...


12월 여의도에서 시렸던 마음으로 밤을 새우며 우울했는데, 낙엽을 주워 든 노년의 남자들 덕분에 초겨울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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