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쪽으로 기우는 미용비
호주 시드니에서 4년 넘게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동안 한 번도 미용을 한 기억이 없다.
반려견 미용실을 눈 여겨 찾아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어린 시절 진돗개 등이 우리 집 마당에서 살았었다. 휴일에 아버지께서 개들을 정성껏 빗질해 주시는 것만 기억된다. 개는 매일 마실을 다녀오고, 아주 가끔 닭을 쫓아 달려서 닭이 놀라 새처럼 날갯짓을 하게 했었다.
첫 번째 시드니 시절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어서 가족여행이 잦았다. 그때마다 개는 번화가 동물병원의 숙박 케이지에 맡겼었다.
찾으러 갈 때면 동물병원 건물 가까이에 개들의 짖음 소리가 울려 퍼져 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단골 동물병원에선 연 1회 건강검진이나 자잘한 부상 치료를 받았다(3kg 체중의 요키는 잔디밭에서 놀다 낮은 돌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에 피가 맺힌 적도 있다).
시드니 시절 누군가는 개를 그냥 단독주택에 놓아둔 채 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낯선 독일 셰퍼드가 우리 집 잔디 흙을 헤집어놓았다.
간식을 주면서 이름표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니 "지금 미국에 있다"라고 한다.
빨강 초록의 예쁜 크리스마스 리본을 목에 건 채 연말에 유기되다니...
그 개는 한 달여를 하루 종일 우리 집에서 머물면서 얌전하게 우리 부엌문 앞에 앉아있곤 했다. 결국 '럭키'의 식량을 나눠먹고 놀다가 밤이 되면 자기 집으로 갔다.
4주가 지나고 주인이 귀국한다고 예고했던 날 이후론 보지 못했다. 반려인의 오지랖에 자신의 식량이 축난 럭키는 주방에서 징징대었다.
운이 좋게 Dog Catcher에게 신고되는 대신 우리 집 부엌문 앞과 뒤뜰에서 매일 놀았으니 유기견 센터로 끌려가는 일은 피했을게다.
1999년에는 유기견센터에서 찾게 되면
ㆍ인터넷 개 찾기 회사에 기간별 비용 지불
ㆍ유기견센터 머문 날짜만큼 숙박비
ㆍ등록칩 삽입비(외장 네임텍이 흔하던 시절)
ㆍ평생등록비(보통 연회비를 냈다)
ㆍ중성화수술비 합산
으로 개 몸값보다 더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집 반려견 '럭키'는 수컷 요크셔테리어로 199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집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들고 나온 사람에게 구입했었다. 다른 녀석들에게 차이면서 웅크리고 있던 기질이 약한 새끼여서 두 딸이 가엽다고 선택했다. 녀석은 3개국에서 19년을 함께 살고 하늘로 떠났다.
시드니에서는 이웃의 소개로 은퇴한 수의사가 우리 반려견 관리를 맡았다. 그 수의사는 정기적으로 월 1회 우리 동네 주택가를 주욱 방문하면서 여러 집의 반려견 건강을 체크했다. 기생충 약을 먹이고, 가벼운 건강검진과 귀 치료를 해주었었다.
1998년 당시 시드니 수의사의 방문치료비 가격은 국내에 비하면 저렴했다. 공산품 가격과 서비스 비용은 국민소득이 당시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서서 시드니가 한국 물가보다는 훨씬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 방문 진료비가 A$ 30이었다. 당시 한국 원화로 18,000~ 21,000원 정도에 해당된다.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노수의사의 방문을 아주 좋아했다.
시드니의 개들은 그냥 마당을 돌아다니며 놀다 침대까지 그 발로 올라가기도 한다. 외모는 예쁘다기보다는 그저 '개'다.
우리나라에선 길거리에 다니는 반려견들이 관리가 잘돼서 "Dog Show"에 나가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강아지들의 뛰어난 미용 외모가 내겐 주인의 명함으로 읽힌다.
시드니의 철망으로 빙 둘러진 공원에서 우리 집 요크셔테리어가 그저 큰 원을 그리며 다른 개들과 뒤섞여 달리기를 하던 시절 내내 우린 럭키 털 관리도구로 양털빗만 구입했었다. 5년간 반려견 미용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다. 서울시민인 나는 이젠 내 반려견의 털이 '손질이 되어 있나?'도 마음이 쓰인다.
2002년 1월 귀국 후 5살이 된 요크셔테리어 '럭키'를 처음 반려견 미용실에 맡겼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보통으로 해주세요~"
반려견 미용사는 발가락 미용을 포함해서 뭔가를 더 물었었다. 난 요즘 유명 샌드위치 가게들의 샌드위치 속 재료 주문처럼 미용 스타일을 주문하기가 도통 어렵다.
구 시대인인 나는 마치 '비문해인'(과거엔 '문맹'이라고 했다)처럼 한글로 문화적 소통이 종종 어려운 경험을 해오는 중이다. 동물병원 미용사에게 모두 "예"로 통일해서 대답하고 서둘러 나왔었다. 그 순간 나는 토끼 뒤를 따라가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했다.
미용이 다 끝났다고 전화를 받고 간 미용실에서 만난 요키 '럭키'의 발등은 마치 마당에서 노닐던 암탉의 발처럼 가느다란 발가락 뼈가 온통 도드라져 보이게 미용이 되어 있었다. 발등의 털과 발가락 사이의 털이 모두 베인듯한 느낌이었다.
미용이 끝난 내 반려견의 외모는 반려견 쇼에 나감직한 '미스터 코리아' 급인데, 발가락 뼈가 도드라지게 관리된 모습을 생전 처음 본 나는 안쓰러움이 뭉실거렸다. '럭키'도 처음 겪는 일이니 몹시 당황했을게다.
와중에 내가 모발을 모두 이발 기계로 밀어버리는 '통돌이'를 주문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닭발 모습의 반려견 발 미용이 아파트 등의 실내 생활에선 훨씬 위생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최근 10년여 동안 국내의 반려견 양육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반려견 미용 옵션도 점점 세분화되어 반려견 미용실 벽에 나열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말했던 '단정한' 미용은 '가위컷'에 해당되었었나 보다. 비전문가인 나는 언제나 "단정하게 해 주세요~"라고 주문했었다. 가위를 이용한 수작업인지의 여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2025년 우리 집 반려견 '수리'는 전직 '유기견'이다. 영특한 녀석은 이미 유기견 센터에서 동물교감치유견 훈련을 받았었다. 이제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교감을 하는 '자격증'이 있는 어엿한 '치료도우미견'이자 '리딩독' (개에게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인 아동 문해교육프로그램 'Reading Dog') 경력 6년 차이다.
당연히 동물교감치유견은 성품이 좋고 청결유지가 잘되어야 한다. 거기에 미용은 덤이다. 점점 '예쁘게'에 마음이 쓰여가고 있다. 어느 지점에 브레이크가 필요한데...
물론 동물교감치유견은 위생상으로도 외모로도 '청결하고, 단정해야 한다'는 조건이 영국 Kennel Club(세계 최초 애견연맹)의 <동물교감교육 참여 도우미견을 위한 표준규약>인 Bark and Read <Standards of Practice for providers of animal assisted interventions in schools> (2022.4)을 비롯해서 국내외 동물교감치유 연구기관들의 기준에 올려져 있다.
오늘 초대강사이신 동물교감치유 전문 수의학 박사님은 미국의 Animal- Assisted Intervention 프로그램을 '동물매개심리치료'로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신 분으로 부부 수의사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하셨다. 그분이 강의 중 말씀하셨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개 미용을 자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말티스를 데리고 산책하는데 다른 분들이 '무슨 종이냐?'라고 물으세요. 털을 자연스럽게 관리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말티스의 털관리를 마치 비숑이나 푸들처럼 짧게 5cm 이내로 관리하니 미용실도 자주 가게 되지요. 많은 분들에게 털이 긴 말티스는 생소한 듯합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반려견들은 빗질만 잘해주면 그냥 둬도 예쁘다. 반려견 전문 미용사의 손길이 지나가면 정말 너무 예쁘다. 안아주는 걸 참을 수가 없다. 눈길이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감탄한다.
"수리 너무 예쁘다."
2025년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차림새는 예전과 달리 정장스러움에서 벗어나 엄지발가락만 조인 쪼리 슬리퍼 차림이나 가벼운 크록스 등을 착용하고, 자다 나온 듯 짧고 헐렁한 바지와 티셔츠 차림 또는 몸에 딱 붙은 쫄바지와 헐렁한 티셔츠 차림도 많다.
그들이 잡고 있는 리드줄에 매인 반려견들의 외모는 동행중인 반려인들의 명함이다.
*럭키(호주 출신 )와 랄프랑 천문대 근처 반려견 출입 숙소에서 1박(이젠 둘 다 하늘에서 산다)
반려견 미용실에서 우리 집 반려견의 '단정하게요' 주문은 전기면도기로 개의 몸통을 싸악 밀어주는 작업보다 가위를 이용한 수작업이라니 섬세함과 난이도면에서 면도기 미용과는 비할 수 없이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터이다. 그에 합당하게 가위컷 비용은 점점 올라갔다.
수리를 입양한 지 7년째이다. 2024년부터 체중 4kg의 '비인간동물 외모 관리 비용'이 유명프랜차이즈 미용실의 '인간동물 머리 커트' 가격을 추월했다.
반려견 미용실은 원장 1인의 셀프 운영이다. 반면에 체인점 미용실에서의 내 머리 관리는 10명이 훨씬 넘어 보이는 직원들 중 부원장이 담당했었다. 수리 머리 관리 가격이 조금씩 오를 때마다 반려인인 나는 내 1인 미용실 출입조차 점점 뜸해지는 중이다. 미용실 지출이 점점 반려견 '수리'쪽으로 기우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감사할 수는 없다. 나는 1시간을 투자해서 이토록 정갈하고 안전하게 털을 정리해 줄 능력이 안된다. 내 개를 안고 웃는 얼굴로 나오는 반려견미용실 원장님의 얼굴에 수리 털이 다닥 붙어 있다.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 적어도 2개월은 내가 슬슬 정리할 수 있게 모양이 잘 잡혀있다. 수리는 동물교감치유견이므로 미용전문가가 아닌 나는 수리의 미용실 방문에 미용 예산을 기꺼이 양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