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hat GPT 덕분에 응급실 내원을

또 하나의 지인처럼

by 윤혜경

며칠 전 일이다. 원고 교정 작업 중 자정이 지나고 1시 넘어 눈물이 줄줄 흘러서 눈앞이 흐려졌다. 컴퓨터 모니터를 더 이상 보기 힘들다.


두 눈이 지나치게 혹사되면 그렇게 쌉싸름한 눈물을 흘려서 휴식 신호를 준다. 원고 검토 의욕은 여전한데, 인공눈물을 넣어도 도움이 되지 않아 작업을 멈췄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잠결에 열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 쪽 손바닥이 많이 가렵고 아프다. 긁으니 예리한 통증이 느껴져서 눈을 떴다. 꿈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박박 긁어서 손바닥과 손가락이 이미 붉게 부어올라 있다.


우선 심한 피부 속 가려움을 진정시키고자 처방받아 간헐적으로 사용 중인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랐다. 효과가 느껴지지 않고 심히 가렵다. 피부 깊숙이 가려워서 긁어도 시원하기는커녕 여전히 가렵고 동시에 아프다. 눈물이 날 만큼.


한 밤 2시 30분이다. 1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플라스틱 알레르기가 있는 손가락과 손바닥이 너무 가렵고 점점 아파서 부드러운 옷에 벅벅 문질렀다. 순간 손가락이 부러지겠다 싶었다.


그토록 가렵고 아프기는 처음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다시 얇게 펴 발랐다.


스테로이드 연고의 장기간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해서 "하루 2회 얇게, 연속 3일 이내"로 제한 사용 처방이었지만, 거기까지 마음 쓸 여유가 없다. 통증과 극심한 가려움이 가라앉지 않고 점점 심해진다.


연고를 바른 손가락을 티슈로 닦아내고 수돗물에 담갔다. 냉수에 담그니 조금 낫다. 얼음을 넣고 식초를 섞어 담그니 더 나아졌다. 통증은 심하다.


얼음 그릇 한 귀퉁이가 손가락 피부에 닿으니 칼로 에이는 듯 아프다. 옷의 지퍼열이 슬쩍 닿았는데 손가락이 면도날에 스친 듯 예리한 통증이 전해졌다.


다시 식초와 얼음을 넣은 물에 손을 넣어 시원함으로 가려움과 통증을 다스리고자 했다. 손가락이 점점 부어서 구부리기가 어려웠다.


이왕 잠을 못 잘 바엔... 가볍게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신을 차리기로. 화면을 켜니 쳇 GPT가 기다리고 있다.


아. 쳇 GPT!

이 시간에도 대화가 가능한 친구가 있었네.


'혹시 쳇에게 물어보면...?'


쳇에게 털어놨다. 이미 15년 넘게 손가락 피부에 플라스틱 알레르기가, 얼굴과 귀 피부에는 요오드, 니켈 등 일부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고.


마우스를 사용 시에는 예리한 통증이 수반되고 피부가 갈라지고 부어오르는 증세를 보여 피부과 전문의의 간헐적 치료를 받아왔다고...


그런 연유로 평소에도 손가락 피부가 따끔거리고 굳어서 바셀린을 도처에 놓아두고 바른다. 손가락 피부가 아파서 면장갑을 끼고 마우스를 잡는다.


쳇 GPT는 '증상을 악화시키는 식초물과 얼음 처치를 당장 멈추고,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을 했다.


'응급실? 손가락 가려움과 붓기 정도로?'


처음엔 공감을 못했지만, 현재 겪는 불안함과 예리한 통증과 함께 한 가려움증은 응급실 내원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승용차로 한밤중인 2시 50분에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마침 경련 환자가 내 바로 뒤에 119로 도착했다. 응급 순번에서 밀린 내 손가락은 치료를 받기 위해 그 환자의 치료가 세팅되는 동안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날 밤은 복잡하지 않은 응급실에 의료진이 단출하여 그 환자에게 몰려 있었다. 한참 후 여직원이 느리게 내게로 왔다. 그리고 접수직원이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내용인즉 '작년부터 중증환자가 아닌 응급실 내원 환자는 의료보험 할인 혜택이 없어져서 1회 방문 기본 비용이 십만 원쯤 된다'라고. '단순 주사처치에 고액 치료비가 나오는데 치료를 받겠느냐'는 응급실 직원의 확인이 재차 반복되었다.


잠시 생각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대안이 없었다. 아침에는 외부 미팅이 있어서 병원을 들를 수도 없으니 일단 처치를 받는 게 필요했다. 다음 날 아침 진료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응급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복용약을 받아오는데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빨갛게 변한 손가락 사이와 손바닥 안의 가려움증도 줄어들고 있을 터이다.


10여 분 거리에 2개의 대학 병원이 있어 새삼 감사하다. 가까운 거리지만 병원을 다녀오는데 대기 시간까지 3시간 여가 소요되어 집에 도착하니 새벽 5시 14분이다.


감사하다~.

참 다행이다. 남편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누구에게 이 시간에 이런 민폐를 끼칠 수 있을까? 늘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는 남편에게 마음 가득 감사했다.


다행히 피부 알레르기가 얼굴로 오지 않고 손가락에서 십 년이 넘게 머물고 있어서 참으로 고맙다. 얼굴을 그토록 피나게 긁었으면 아마도 외출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게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다른 일로 전화를 걸어온 작은 딸에게 알레르기 상황을 알렸다. 병은 알리는 게 맞나 보다. 작은 딸이 말했다.


"엄마, 그럴 때 119에 상담 신청을 하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안내로 이어져요. 지난번 훈이(5살)가 한밤중에 열이 심해서 전화를 했더니 그런 도움을 주더라고요. 다음에는 '쳇' 보다는 '119 상담'을 신청하세요."


그렇긴 하지만, 이처럼 비응급? 상황에선 예의 바르게 고운 말투로 정보를 주는 쳇이 감정 기복이 있어 불쑥 무례를 내미는 사람보다 위안이 된다.


어쨌건 손가락 가려움증과 붓기로 응급실 내원과 119 전화 상담은 경험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나의 불편한 상황을 또 하나의 지인이 된 쳇의 조언 덕분에 잘 수습할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이만하면 '오늘도 무사히~' 인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최선과 희생 덕분에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도 최선을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따스한 글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