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우 Mar 01. 2023

가장 저렴하게 공간을 망치는 방법

뒹굴대며 읽는 음악치료 이야기_알면 재미있는 음악_세 번째

2007년 돈이 필요했던 나는 한 박물관 안에 있는 양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한 커플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성분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여기 원래 이런 분위기였어? 음악이 되게 좋은데.”


당시 매장에 틀어 놓은 음악은 느린 템포의 재즈 연주곡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왜 그 커플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전에는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틀어놨었길래? 하지만 영업 종료 한 시간 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듣고 싶은 음악 틀어야지.”


오디오 앞에 선 팀장의 혼잣말이었다. 그리고 매장에는 김건모의 댄스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매장 분위기는 클럽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날 영업이 끝났다. 


다음 날 점심, 매장에 출근한 나는 깜짝 놀랐다. 이번에 들리는 음악은 재즈도 김건모도 아니었다. 커다란 식당 안에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중 가장 연장자가 준비해 온 음악이었다. 어느새 우리의 일터는 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김건모의 노래나 찬송가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노래가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스트레스를 풀고 신나게 춤을 추기 위해 간 클럽에서 난데없이 느린 템포의 재즈 연주곡만 등장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상당히 실망할 것이고 환불 요청이 쇄도할 것이다. 음악은 공간을 완성시키는 가장 저렴한 인테리어 소품이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밥을 먹기 위해서다. 하지만 식당에서 밥만 먹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과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밥을 먹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이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그래서 고급 식당일수록 손님이 식사를 하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한다. 분위기 있는 양식당에 재즈 연주곡이 가장 어울렸던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 보컬이 없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데 중요하다. 인간관계에 따라 방문하는 식당의 성격이 달라진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가사가 익숙지 않은 외국어라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집중이 덜 되는 편이다. 하지만 가사가 모국어라면 뜻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더욱 노래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급 식당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 보컬이 없는 연주곡을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캐주얼한 펍(Pub)을 떠올려보자. 이런 장소는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곳은 함께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여럿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이곳은 보컬이 들어간 노래가 들어가도 괜찮다. 왜냐하면 보컬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자연스럽게 섞여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화 나누는 소리가 있어야 공간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너무 조용한 분위기는 오히려 썰렁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처음 들어오는 손님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캐주얼 스타일의 펍(Pub)은 말소리가 공간을 채워야 활발한 분위기가 된다.


공간의 배경음악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다음 요소는 음악의 속도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음악의 속도에 맞춰 행동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피트니스 센터에는 항상 속도가 빠른 음악을 튼다. 그래야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느린 발라드나 국악만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사람들이 운동하고 싶은 기분이 급격하게 내려갈 것이다. 


피트니스 센터는 항상 신나는 음악을 튼다. 조용한 피트니스 센터는 운동 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


고급 식당에서는 보통 느린 속도의 음악을 튼다. 그래야 천천히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회전율이 중요한 캐주얼한 식당에서는 손님이 식사를 빨리 마치고 나가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기에 빠른 템포의 노래를 틀기도 한다.


위의 요소를 고려해서 배경음악을 정했다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음악의 볼륨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찾았다고 해도 적절한 크기의 볼륨으로 틀지 않으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일반적으로 빠른 속도의 음악은 큰 볼륨으로, 느린 속도의 음악은 낮은 볼륨으로 틀 때가 많다. 피트니스 센터의 경우 속도가 빠른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에 볼륨 또한 크다. 춤을 추는 클럽을 생각해 보자. 클럽에서도 빠른 템포의 노래를, 서로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매우 크게 튼다. 그래야 사람들이 음악 자체에 몰입해 춤을 추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급 식당에는 잔잔한 음악이 매우 작게 들린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트는 곳도 있다. 그래야 음악이 분위기를 이끌면서도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클럽과 클래식 연주곡을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트는 식당을 상상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배경음악을 잘 사용하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매장에 대해 친숙한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다. 이마트의 경우는 배경음악을 재미있게 잘 사용한 케이스다. 마트라는 공간을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장소가 아닌, 가족의 추억이 담긴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계획이 음악에서 나타난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이마트 매장 음악 영상을 다시 들어보자. 


노래들이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 쉬운 멜로디와 반복적인 리듬 패턴, 그리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부드러운 음색의 보컬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다. 가사 내용도 마트와 관련 있는 긍정적인 내용이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쇼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금 있는 공간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 영상 댓글을 보면 과거에 마트에서 장을 보던 추억이 떠올라 감상에 젖었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봤을 때 업체의 의도는 성공한 듯하다. 


과거 CD나 mp3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업주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적당한 노래를 준비해 오라고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르바이트생 취향 위주의,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노래들이 섞여 있어 언밸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요즘은 업주들이 음악 선정에 고민을 덜 하게 된 시대이다. 유튜브만 들어가도 ‘카페에서 들으면 좋은 노래', ‘신나는 노래 두 시간 무료재생’처럼 테마가 있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영상이 존재한다. 만일 자신의 개성을 보다 더 드러내고 싶은 업주라면 한 번쯤 자신의 매장 음악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인터넷에는 저작권이 없어 자유롭게 틀 수 있는 무료 음원도 상당히 많다. 가장 저렴하게 공간에 개성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순한 음악이 무서운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