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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Mar 07. 2023

말로 아이를 설득하라고요?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

뒹굴대며 읽는 음악치료 이야기_그런데 치료가 뭐야?_첫 번째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이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복지관에서 음악치료사로 일하던 나는 한 아이에 대한 치료 의뢰를 받았다. 아이는 편모가정에서 자라다 5년 전 어머니가 재혼한 상황이었다.


치료 프로그램에 의뢰한 이유는 아이가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가족이 반대하는데도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주장이 너무 강해 자주 싸우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다른 형제들은 다 알아서 자기 일을 잘하는데 이 아이만 자꾸 말썽을 부린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몇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부모만 반대하는 게 아니고 온 가족이 전부 반대를 한다고? 왜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예상과는 다르게 첫 번째 만남에서 아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판단될 즈음 나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다른 직업도 많은데 왜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거야?”

“축구선수가 가장 강하니까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축구가 재미있다거나 장래성이 있기 때문에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 내 말을 무시해요. 얼마 전에 동생도 나한테 축구선수 같은 거 하면 인생 망한다고 말했어요.”


동생이라면 아직 다섯 살일 텐데 말하는 내용은 다섯 살 아이의 통찰력이 아니다. 평상시에 부모나 다른 어른들이 하는 말을 주워듣고 따라 한 것이다. 아이는 한참 어린 동생에게도 무시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치료실에서 알게 된 아이의 문제는 단순히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치료실에서 흔히 보이는 가족 희생양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가족 중 가장 여리거나 힘이 없는 아이가 가족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 가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일 수도 집안 간의 갈등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이 아이에게 돌린 것이다.


“우리 가족이 힘든 건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야. 네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야.”


가족 희생양 역할을 맡은 아이는 부모에 의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집안 분위기를 해치는 문제아로 만들어진다. 그 아이가 문제일 뿐이지 남은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 내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아이만 희생하면 다른 가족은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부모도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아이에게 가족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맞서기에는 너무 약했고 무엇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은 축구가 좋아서가 아닌,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봤을 때 가장 강한 어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강해지고 싶었다.


치료 프로그램을 5회기 가량 진행한 후 어머니와 직접 만나 부모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가진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상담 마지막에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그냥 말로 잘 설득해서 운동 말고 공부하도록 해 주세요. 그게 당신이 하는 일이잖아요.”


본 아동과의 상담은 여기서 끝났다. 어머니는 국비 아동 심리지원 서비스를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 뒤로는 소식이 없었다. 몇 년 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아동은 문제를 일으켜 경찰서에도 몇 번 갔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다. 아직 이 케이스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음악치료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맡은 초기 케이스이기도 하지만 경험이 쌓인 지금이라면 이 가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치료가 실패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내담자 부모는 치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치료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편에 서서 아이를 설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자기를 지지하는 아군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필자의 부모 상담 기술 미숙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치료실에 데려오고, 돈을 지불하고, 치료를 지속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다. 부모 역시 정신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해결하기보다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도록 이끌었어야 했다. 


내면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도망가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해당 사례에 등장하는 부모는 치료사의 역할을 착각하고 있었다. 만일 교사였다면 아동에게 적절한 교육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된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치료사는 다르다. 필자가 아동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득을 했다고 치자. 그게 과연 아동에게 먹혔을까? 아마 부모님 하고 똑같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긴 채로 치료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치료사는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심리학 이론에 비추어 조언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치료사는 내담자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중재자일 뿐이다. 치료사는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답은 내담자가 가지고 있다. 치료사는 그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치료사는 셜록 홈스처럼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원인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실제 현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치료사가 천기누설급의 진실을 말하더라도 내담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치료사와 내담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문제를 탐구해 나가야 한다. 위 사례에서 부모 상담이 실패한 이유가 이것이다.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진실을 말하면 부모는 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부모 역시 스스로 깨닫고 답을 찾도록 이끌었어야 한다. 아동 상담에서 부모는 내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부모 상담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챕터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아동 상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부모 상담이기 때문이다.


치료사는 탐정처럼 혼자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 자체보다 중요한건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의 신뢰 관계다.


이번엔 다른 사례를 이야기해 보자. 2013년에 한 상담센터에서 일할 당시 중학생 청소년 치료를 의뢰받았다. 철수(가명)는 1년 전부터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문제를 일으켰다. 단체로 절도 행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도 다녀왔다. 조사 결과 참여 정도가 미미했기 때문에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몇 번 더 비슷한 사건에 연루되곤 했다. 현재는 학교를 자퇴한 상태였다.


치료실에 들어온 철수는 예상과는 다르게 소심해 보이는 아이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했으며 어깨는 축 처져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억지로 이야기를 하게 할 수는 없었다. 먼저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주는 것이 중요했다. 치료 시간 동안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신뢰감을 쌓아 나갔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철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실은 그때 그 아이들과 놀기 싫었어요. 그런데 한 번 어울리다 보니 빠지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이때부터 철수는 조금씩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하고 다섯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함께 송민호의 ‘겁’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였다.


"아무것도 보기 싫었을 때 억지로 눈을 부릅뜬 건

그냥 겁나서 덜컥 겁이 나서 그래"


노래를 듣고 나서 철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도 겁나서 그랬었던 것 같아요. 강한 애들이랑 어울리려고 했던 거요. 그렇다고 내가 강해지는 게 아닌데.”


원래 철수는 초등학교 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참아왔던 것이다. 중학교로 넘어오면서 따돌림당하기 싫다는 욕구로 인해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와 어울리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제 괜찮아요.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았어요. 그리고 아빠도 엄마도 항상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선생님도 고마워요.”


그리고 철수의 치료는 오래 지나지 않아 종결했다. 철수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고 문제없이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스로 해답을 찾고 자신의 힘을 깨달은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 치료사는 이를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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