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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Jan 19. 2021

인공지능의 유우머

시리에 농담 기능이 탑재된 이유?!

코로나로 집에 박혀있는 일상이 늘고 있는 요즘이다. 의자를 빙빙 돌리다가 나의 개인 비서를 자처하는 시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Siri야, 아무거나 말해 봐.”

참 이상한 일이다. 이런 농담 따먹기를 개발한 개발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기능을 넣은 것일까? 이런 답변을 출력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만큼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을 열심히 시켜야 하는데,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은 꽤나 고되고 만만치 않다. 그것을 생각하면, 개발자들의 노고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나의 최종 목표도 유머러스한 인공지능이다. 단순히 선문답이나 하이(?) 개그로 대화를 끝내버리는 유머가 아닌, 날 선 상황을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재치 있는 유머 말이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 자연어처리)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점이 ‘유머’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청각 자료를 통해 ‘유머러스한 인공지능’을 많이 접해왔다. 아이언맨의 자비스, 인터스텔라의 네비게이터 로봇 타스(TARS), 굿플레이스의 재닛까지. 심지어 인터스텔라의 로봇은 농담의 정도가 퍼센티지(%)로 표현되며, 이를 사용자가 조절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나를 포함한) 개발자들은 도대체 왜 인공지능의 유머 감각에 집착하는 것일까? 인공지능의 유래를 생각하면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 인공지능은 본래 ‘인간이 생각하는 과정을 본떠서 생각할 줄 아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볼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한참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출발은 그랬다) 어원부터 그렇다. ‘인공적으로’ 만든 지능이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지능은 인간의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수준을 어느 정도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유머 또한 인간의 지능에 기인한다. 유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1) 상대와 나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2) 관용어나 비유를 사용하여, (3) 상대가 기분 나빠 하지 않을 선을 지켜야 한다. 말투와 톤마저 미세하게 변화하기도 한다. (손 제스처나 표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손과 표정이 없는 인공지능이 대다수이므로 일단 생략하자) 지능과 유머 감각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심심찮게 있다. ‘재밌어 보이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일단 해보는’ 습성을 가진 개발자들에게, 유머러스한 인공지능은 꽤나 도전적인 주제인 것이다.

또한, 유머는 인간적이다. 일부 유머러스한 인공지능이 바로 앞의 문장을 들으면 화낼 수도 있으니 말을 바꿔 보자면, 사회적인 행위이다. 인류학자 최진숙은 ‘농담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적합한 행위다.’라고 말한다. 농담의 교환이 영장류들의 털 솎아주기와 같이, 사회관계 유지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낯선 이와 친해지기 위해 농담을 건네고 상대가 웃으면 안심한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갈수록 더 많은 농담과 웃음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치고, 이성적인 사업가들이 인공지능에 유머 감각을 부여하도록 허락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다시 말해, 이게 돈이 될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의 소비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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