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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Dec 20. 2021

낙인이 싫다

용서받지 못한 자


난, 유명해지면 안 될 거 같아.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해지면 일단 신상이 털린다. 그 사람에게 먼지가 나지 않으면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친척들까지도 탈탈 털린다. 잘 되는 게 배 아픈 누군가로부터 악의적으로 시작된 사냥이다 보니 티끌 하나는 나와줘야 끝이 난다. 같은 반 친구였다고, 동네 이웃이었다고, 회사 동료였다고 한 마디씩만 거들어도 매장되는 건 시간문제다.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무섭게 달려든다. 피투성이가 된 유명인은 그렇게 몰락한다.


물론 그들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아니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한편 씁쓸한 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도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용서해주지 않는다. 사과에 담긴 진정성까지도 의심한다. 죄의 경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방구석에 틀어박혀 쥐 죽은 듯 조용히 살기를 바란다. 시간이 흘러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으면 또 매질을 한다. 벌써? 들이 바라는 자숙의 시간은 남은 평생이다.   기준에서는 한 번이라도 '그랬던' 사람은 언젠가 또 '그럴' 사람이니까.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혀요. 게다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한테 하는 건 아니죠. 그건 저 숨을 구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편네가 안 받았지. 그럴 거잖아? - 영화 <우아한 거짓말> 중


지금 우리 사회어떤 잘못도 용서해 줄 마음이 없다. A가 B에게 잘못한 일이, A가 전 국민에게 잘못한 일이 되어, 전 국민이 A를 욕한다.


죽을 때까지도 사과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느냐며 모두가 손가락질했다. 웃기지 않나. 그게 용서가 될 일도 아니고, 용서해 줄 생각도 없으면서, 사과만 요구하는 게?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악동뮤지션이 나왔다. 어릴 적 두 남매가 싸울 때면 부모님은 이렇게 화해를 시켰단다. 한 명이 미안해, 하며 상대의 한쪽 팔을 쓱 훑으면 다른 한 명이 괜찮아,라고 하며 상대의 팔을 쓱 훑었다고. 그러면 싸움 끝! 뒤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도 그렇게 배웠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살짝 불만은 있다.


A는 B를 수시로 때렸다. 그런데 또 금방 사과를 했다. B가 받아주지 않으면 열 번, 스무 번 다가와 사과를 했다. 그래도 B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과를 하던 A가 다시 B를 때렸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누구의 잘못일까.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도 B는 일단 A의 사과를 받아줬어야 할까?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B는 시간이 필요했고, A는 기다려줘야 했다.


사과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미안해"라고 하면 "괜찮아."라는 말 대신 일단 "알았어."라고 하면 안 될까. 내 마음이 지금은 안 괜찮으니까. 사과는 받지만 용서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사실.


나는 A를 용서해주지 않으면서도, B는 나를 용서해줬으면 한다. 내가 A를 용서하지 않는데, 그녀가 A를 용서해주는 싫다. 내가 미안해,라고 하면 그가 웃으면서 괜찮아,라고 해줬으면 한다. 그가 미안해,라고 하면 난 샐쭉하게 알았어,라고 하면서.


내로남불만 아니면 쉬울 것 같다. 사과도, 용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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