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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Feb 24. 2022

죄책감이 싫다

전업이라는 이유로


남편은 매달 스트레스를 받다가 일 년에 한 번 터뜨리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엔 둘 다 잔뜩 날을 세운다. 아낀다고 아꼈는데! 의미 없는 투덜거림도 강력한 불꽃이 었다. 그럼 내가 막 썼다는 거야 뭐야! 누구의 탓이 아니라고 해도 사실상 내가 오롯이 그 책임을 떠안는다. 주부라는 이유로.


신혼 초에는 그렇게 달라고 해도 주지 않던 경제권을 이제야 준다고 한다. 왜 하필 지금? 남편의 월급을 알고,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과 남아있는 돈을 아는데?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7천 원. 그걸 굳이 받아야 할까? 내가 경제권을 가지면 365일 스트레스받고, 매일 터질 것이다. 2022년에 만 원의 행복이 가능하겠냐고. 하여 경제권을 물려받기보다 일단 무작정, 아껴보기로 했다.


저렴한 식재료들로, 찬장에 쌓여있는 통조림으로 차려진 밥상에 있던 식욕도 사라질 즈음 남편이 말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고. 실로 대충 때운다는 느낌으로 저녁밥을 먹고 나면 금방 입이 궁금해졌다. 남편은 밤 10시가 넘어가면 간식거리를 찾았다. 뭐 시켜먹을까? 간식 없나? 절약을 다짐했던 며칠 전에도, 남편은 자기가 뭘 시켜먹자고 하거나, 뭘 사자고 하면 내 선에서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이게 원래 우리의 소비 패턴이다. 남편의 짧고 강한 설득과 회유에 넘어가면 돈이 나갔다. 처음에는 막았다가, 그다음엔 못 들은 척했다가, 끝내 못 이기는 척 끄덕이는 악순환의 연속. 그렇게 내 허락과 동시에 소비가 이뤄지니 나는 나대로 죄책감이 들었다. 나도 사고 싶었던, 먹고 싶었던 거라면 나 역시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나라고 왜...!  


나는 먼저 뭘 사자고, 먹자고, 가자고 하지 않았다. 아껴야 하니까. 그럼에도 적자와 빚이 고스란히 내 탓이 되는 건, 죄책감이 내 몫이 되는 건 전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 그런 걸까. 그런데 또 그런 자잘한 소비들까지 억제하니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았다. 사는 재미가 없달까. 어쩌지?


7천 원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일단 '정도껏'이 없다.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는 동안은 늘 함께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 '전업'을 택했으니까. 혼자 놀아, 엄마는 엄마 하고 싶은 거 할게! 이게 되지 않는 사람이다. 직무유기 같아서. 어린이집 가있었던 시간, 그 이상을 보상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원 후 같이 뛰어놀다 보면 주말엔 방전이 되어 정신을 못차렸다. 잠을 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또 잠을 안 자면 찐 리액션이 나오지 않고. 그로 인한 죄책감은 그 어떤 불법 대출 이자율보다 높았다.    


어린이집 수료와 동시에 방학이 찾아왔다. 아이와 함께 할 2주가 벌써 까마득하다. 다가오는 방학을 두려워하는 내게 친정 엄마는 "엄마 잠깐 누워 있을게. 혼자 놀고 있어."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잠깐씩이라도 쉬란다. 교외로 나가 무슨무슨 체험은 못해줘도 아이의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주말 늦은 오후에 잠깐 자는 것도 미안해 죽을 판에...

핸드폰을 멀리 두, 온 마음을 다해 같이 '놀았던 날'은 아이의 표정도 달랐다. 아이의 그 표정을 마주해야 오늘의 내가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그날은 아이도 잠드는 순간까지 이야기를 한다. 너무 재미있었다고.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매일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전업 엄마라면. 이런 소소한 것들조차도 매일 해주지 못한다는 것 또한 죄책감 리스트에 추가되니 당최 알 수가 없다. 그 끝이 어딘지.


그나마 다행인 건, 어린이집을 수료했다는 것!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될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죄책감과 그 시간만큼 보상해줘야 한다는 마음의 빚은 덜었다, 이제야. 유치원에 다니면 주말 중에 하루 정도는 낮잠을 자도 괜찮겠지? 하원 후에 집안일을 해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거 보면 어린이집을 보냈던 게 두고두고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응당 가야 할 곳을 가는 것과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곳을 보내는 것의 차이란...확진자가 계속 늘면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마음 편하지는 않겠지만...


아이가 혼자 잘 놀아도 엄마는 늘 곁에 있어야 했다.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방치한 거 아니야? 학대 아니야? 엄마는 뭐 했대?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지만 스스로를 가뒀다. 전업 프레임에.

그런데 전문가들이 말하는 방치와 학대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를 말하는 거 아닐까. 적어도 난 '그런' 엄마는 아니니 이제 좀 내려놓을까.


우리 이제 다섯 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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