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가 빗나가기를, 개표 초반의 흐름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봤던 수치가 그대로 이어졌다. 50%, 51%... 더 볼 것도 없이 당선이 확실했다. 환희와 기쁨이 가득했던 순간, 잠에서 깬 나는 바로 핸드폰을 열었다. 결과는 헉!이었다. 여기에 쏟아지는 뉴스 기사와 댓글, 네이버 카페의 글까지 보니 더 참담했다. 수치 상으로는 24만 표, 0.7%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이건 뭐 마치 압승 분위기였다. 전 국민이 변화를 원했다는 듯, 이번 정권이 실패했다는 듯 판세를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47.83%의 국민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개표 초반 이 후보의 표가 더 많았던 시점, 온라인 카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여느 선거 때와 마찬가지지만 투표용지가 섞였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의 투표함이 도난당했네, 개표가 중단됐네, 사전 투표를 먼저 개표하라는 지시가 있었네! 갖은 의혹과 루머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이 후보를 뽑은 사람들을 개, 돼지로 폄하하며 우리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몰았다. 그들은 왜, 항상, 저럴까.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총선 때도 그들은 결과를 결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도 그에 따라 이건 이긴 게 아니라는 둥, 우쭐대지 말라는 둥 찬물을 끼얹기 바빴다. 진보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고, 지면 진대로 실패, 낙오의 오명을 옴팡 뒤집어썼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물론 그들을 지지했던 국민까지 모두, 같은 처지였다. 승패와 관계없이 늘 당당한 보수로 갈아탈까.
L은 대출을 완화해준다는 공약 하나 믿고 이번에 처음 보수를 찍었단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해 줄 은인 같은 분이라고. 대출을 완화해주면 집값이 더 오르지 않을까. 그럼 대출을 더 많이 받아야 할 텐데. 이자와 원금 내고 나면 먹고 살기 더 힘들어질 텐데... L은 내 집만 있으면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긴... 코로나19가 터지자마자 L은 정부를 욕했다. 입국하는 사람들을 막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라고. L은 지금까지 코로나 백신을 단 한 번도 접종하지 않았다. 이놈의 정부, 믿을 수가 없다고.
진보였던 L이 이러저러한 계기로 보수로 갈아탔다. 이후 L은 진보를 경멸했다. 편향된 정보만 흡수하여 저장, 그렇게 새겨진 이념이 곧 진리이자 정답이었다. 그 외의 정보들은 모두 '가짜 뉴스'였다. 정부를 믿지 마라, 국민을 속이고 있다, 깨어나라 우매한 국민들이여! 매일같이 외쳤다.
네가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또한 기독교든, 불교든 상관없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대로 인정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진보를, 불교를 깔아 내리며 보수로, 기독교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쓰는 건지... 왜 유난히 그쪽 사람들은 그러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 그들은 알까?
다른 대통령들은 토실토실 살도 오르던데, 얼굴에서 광이 나던데, 얼굴이 폈던데.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얼굴에서 광이 난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고. 이젠 아낄수록, 사랑할수록 보수에 표를 던져야 할 것 같다. 내 사람이 욕먹는 거 싫으니까. 고생하는 거 보기 싫으니까. 오히려 잘됐다. 보수가 집권한다고 세상이 확 달라질 거 같으냐. 대출이 확 풀릴 거 같으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에도, 그를 원했던 사람들은 한껏 기대했다.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하지만 생각처럼 확 달라지지 않자 사람들은 금방 수군거렸다. 못한 일은 두고두고 오르내렸고 잘한 일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 아무도 몰라줘도 다음 대통령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해놨는지. 그걸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난 47.83%에 속하는 국민이다. 졌지만, 실패한 건 아니다. 0.7% 차이로 그런 말 하는 거 너무 우습지 않나. 일일 확진자 수보다 적은데. 그래도 저들이 이긴 건 이긴 거니까 한 마디 하자면, 내가 찍은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지 않아서 정말! 휴우... 천만다행이다. 국회의원들이 잘 막아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