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과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강하고 봐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요즘젊은 부모들은자녀들이'착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착한 거 다 필요 없어, 이용이나 당하지! 란 생각을 하는 걸 보면,마음 한편 '착한 사람=약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도 같다.
좋게 말해 약육강식이고 강약약강이다. 강한 사람, 약한 사람으로 구분한 거 자체가 이들을 부채질한 탓도 있을 터. 강약약강은 그냥나쁜 사람이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가평 계곡 사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단순히 사이코패스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한, 강약약강의 사람들! 그냥 못돼 처먹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고작 대여섯 살의 아이들 세계에서도 그런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괴롭히기 좋은 상대를 골라, 수시로 간을 보는 A가 있다. B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그렇게 자꾸 건드렸다. 하지 말라고 부탁도 해보고, 자리를 피해도 봤지만 A는 아랑곳하지 않고 따라와 왜 안 우냐며, 계속 깐족거렸다. 그러다 B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손이 올라가면, 그래서 A가 다치면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A의 부모는 B를 탓할 것이다. 맞은 쪽이, 피를 본 쪽이 피해자가 되니까. '아이가 나쁜 뜻으로 그랬겠냐고. 그저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부모의 이런 얄팍한 생각이 아이를 망친다는 걸 모르겠지, 아마? 건드리기 좋은 상대를 고르는 '안목'도, 손을 대지 않고 괴롭히는 '방법'도 그렇게 다져지는 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 아이에게 다음부터 얼씬도 못하게 너도 가서 한 방 크게 때려!라고 가르치진 않는다. 저렇게 친구 괴롭히고, 약 올리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그래도 절대 때리지는 말라고, 그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최대한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요즘 엄마들은 이걸 또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만드는 거라며 극혐하더라.
스카치테이프를 돌돌 말아 툭툭 던지거나, 말투나 생김새를 따라 하며 놀리거나, 슬쩍 발을 걸거나,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에 쓰레기를 넣어놓거나, 문자메시지로 욕을 보내는 등... 선생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친구들을 괴롭혔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할 수밖에 없다. 티 나지 않게 몰래 하는 법을 먼저 배웠으니까. 크게 혼난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이들은 교화될 기회 없이 '대놓고 불량 학생'보다 더 악질로 크는 거다.
가평 계곡 사건의 미공개 동영상 파일들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남편은 하지 말라고 애원을 하는데, 저들은 시시덕거리며 조롱하고 있다. 남편은 정말 몰랐을까. 이X해와 조X수의 관계를, 이X해란 사람의 됨됨이를. 그는 아마도 매번 당하면서도 이X해의 달콤한 한 마디에 홀랑 넘어가는 '순수한' 사람이었으리라.
순수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건 맞다. 자기는 친구라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전혀 아닌 경우가 (보통 사람들보다) 자주 발생한다. 그럼에도 금방 또 누군가를 믿고, 당한다. 당해놓고도 당했단 사실을 모르기도 하지 가끔. 하지만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제발이지 그만 이용했으면 좋겠다. 이러다 나중에 살아남기 위해 다 못된 사람들만 남으면 어쩌려고 그래.
난 오래전부터 인상이나 말투가 세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 일단 멀리했다. 그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해 더 살아봤다고 또 달라졌다. 진짜 '강한 사람'은 말로 교묘하게 사람을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가스라이팅에 능한 사람이랄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게 '만드는' 사람이 무서웠다. 교묘한 게 제일 무섭다.
착한 사람은 죽어나가고, 나쁜 사람들이 살아남아 떵떵거리는 게2022년 판약육강식인가. 전래동화 속의 결말처럼 권선징악이 현실에서도 이뤄졌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악하고 강한 사람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선한 사람이 악해져야 하는 게 아니라, 그들보다 더강해져야 한다. 아이들에게 '착한 거 다 필요 없다'라고 말하기 전에 강해지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