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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Nov 30. 2022

자매에게,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11

22.11.10





나에게 자매란,

어느 날은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 애들이 겪을 삶의 풍파를 내가 다 뒤집어 겪고 싶고, 또 어느 날은 어떻게 이렇게나 이해를 할 수 없을까 싶다가도, 금세 손잡고 야밤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가고 싶은 존재이다.


‘자매’라는 주제는 내게 두 동생들일 텐데 그들에 대해서 쓰는 것은 내 인생의 전반을 아우러야했기에 한 문장 적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좋다, 싫다, 밉다, 사랑한다- 등의 한 단어로 끝나기 어려운 다면적인 요소였던 그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지만 어떠한 일을 이야기할지 한참을 막막했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형재애를 다룬 영화를 보았다. 생사의 기로 앞에서 둘 중에 한 명만 살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형제는 서로에게 삶을 양보하려 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 자신보다 동생들이 소중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스크린 앞에서 같은 상황에 놓여진 나와 내 동생들의 결말을 떠올렸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죽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삶의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는 현재를, 나의 생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저런 상황이 불가피하게 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죽음을 택할 수 있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가끔은 너무 미워 죽겠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다니, 조금 우습다.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위에서 말했지만 그럼에도 미운건 미운 거다. 최근에도 미운 일들이 작게 작게 있었지만 너무 작아서 기억이 나질 않아 나열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우리 셋은 서로 너무 많이 달라서 생각도, 성향도, 습관도, 가치관도, 당연하게도 물과 기름 같을 때가 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양보 없이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우스갯소리로 가족이 아닌 남이라면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자주 했다) 게다가 청소년기에는 각각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곁에 없는 게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굳게 믿는 우리들이지만, 가족이라는 틀에 묶여 함께 겪은 무수한 인생의 역사는 셋에게 동일한 양상으로 남겨져있을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여기까지 적었는데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확하게는 모르겠다. 그저 좋은 게 있으면 기꺼이 주고 싶고, 걱정스러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하고 싶고, 심심할 때는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 그러고 보면 많이 아끼는 것 같다. 언제였던가- 나는 첫째로서 이 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더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문득 존재만으로 나라는 사람이 형성되는 일에 무해한 영향력을 끼친 것을 지금 깨달은 것 같다.


아이였을 때는 손 붙잡고 다녔고, 사춘기 시절엔 코피 터지도록 싸웠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 있어주는 건 서로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해 주었던 두 동생들이 애틋해지는 하루다. 시작에서 끝까지의 나의 전부를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한 마음이다. 조금 더 잘해줘야지. 조금 덜 미워해야지. 잊지말고 안부를 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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