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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an 04. 2023

'밥'에 관한 짧은 단상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13

 22.12.17




밥, 한국인은 모든 대화에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밥 먹었니

다음에 밥 한번 먹자

한국인은 밥심!

밥 사주는 사람, 좋은 사람


등등

나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밥과 관련된 말을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밥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체질적으로 적게 먹고 자주 먹는 편이고, 위가 좀 약해서 ‘앗 내일 뭔가 체 할 것 같은데’하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체하고야 만다. 그리고 작년엔 부모님이 한동안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셔서 그런지 나도 적게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나도 예전에는 분명 피자 한판 다 먹는 사람이었다. (아 물론 피자스쿨 피자) 여하튼 중고등학생 때는 먹는 게 낙이었을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학교 급식대신 몇 명 모여 엽떡을 시켜 먹기도 했고, 가끔은 몰래 담을 넘어 멀리 떨어진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뚝배기 먹고 오기도 했다. 그냥 그 시절에는 맛있는 걸 먹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는데 지금 글을 쓰며 다시금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다.



다시 나의 ‘밥 그리고 인생’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이십 대의 절반을 보냈는데 홀로 이국(異國)에서 밥다운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가장 먼저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그나마 대학생 때는 주변친구들이 (한국인도 아니면서) 항상 나에게 밥 좀 먹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주었고, 밥시간되면 졸린 나를 식당으로 끌고 다니는 단짝들도 있었으니 그럭저럭 잘 먹고 지냈다. 그렇지만 대학졸업 후 회색빌딩과 너무 커다란 어른들이 많은 대도시에서 나홀로집에를 찍으려니 아 인생, 어쩜 그렇게 어렵고도 자유로운지. 완연하게 혼자였으니 그만큼 외로웠고, 그만큼 심심했다. 또 인생에선 가장 자유로웠다. 그 당시 나에게는 사진 찍으러 나가는 게, 친구들과 약속 잡는 게, 밀린 드라마 보는 게, 모르는 곳으로 훌쩍 여행 가는 게, 가끔 새벽에 친구들과 멋진 바에 가는 게, 집밥 챙겨 먹는 것보다 더 소중했다. 매끼를 대충 챙겨 먹었다. 하루 한 끼는 패스트푸드였고 또 다른 한 끼는 고구마나 달걀 한 개였다. 혼자 먹을 땐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엔 아무 생각 없이 눈감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 곁엔 가족이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먹었던 엄마 집밥도 매일 먹을 수 있었고, 요리가 취미인 동생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돌아와 십 킬로가량이 쪘다. 매일매일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과 나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음식이 태반이었다. 이렇게 아주 잘 먹고 아주 잘 지냈지만 사실 이때까지도 음식은 나에겐 살기 위해 섭취하는 것일 뿐이었다.



나는 작년에야 원래 살고 있던 도시에서 벗어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역시 사람은 태어나 서울로 가라고, 그 짧은 사이 난 지금껏 살면서 처음 먹어본 음식도 접해보았고, 자주 먹었던 음식이 분명한데 인테리어만 보아도 배부른 멋진 식당에도 다녀왔다. 다 신기하고 다 즐겁게 먹었지만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그러니까 오늘 소개하려 했던 내 소울푸드는 ‘카이센동’이었다. 한국말로 하면 ‘회덮밥’.


무슨 날이었지. 어느 여름 주말 집에 있기엔 몸이 너무 근질거려 차를 타고 어디론가 출발했었다. 낮에도 밤에도 대학생들이 많은 그런 대학가였는데 어쩌다 우연히 지하에 있는 카이센동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하라 그런가, 주말 저녁이라 그런가 나랑 내 친구를 빼고는 가게가 텅 비어져있었다. 잘못 골랐나- 싶었지만 한번 경험해볼까도 싶었다. 메뉴판은 조촐했다. 모든 메뉴를 다 꼽아도 대여섯 개밖에 안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킨 카이센동은 플레이팅이 아주 잘 되어있었다. 게맛이 우러나온 장국과 부드럽고 개운한 일본식 계란찜, 직접 한 느낌의 연근조림, 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작은 디저트, 그리고 주인공인 카이센동.


카이센동은 참치회, 광어, 갑오징어, 가리비, 단새우, 연어 등 매번 갈 때마다 제철인 해산물로 바뀌는 것 같다. 지금껏 몇 번씩 먹어보았지만 단 한 번도 비린맛이 난 적이 없었다. 항상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며 온전하게 그 생선의 맛이 났다. 그 첫날, 너무 생각지도 못하게 맛있어서 그런지 그날 이후로 자주 생각이 났고, 그렇게 그곳의 카이센동은 나에게 소울푸드가 되었다.


첫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어깨가 뻐근해진 날에, 월급날이 되어 기분내고 싶은 날에,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배고프다고 한 날에, 며칠을 가볍게 먹고 위가 아주아주 무거워지고 싶은 그런 날에는 항상 그곳을 찾았다.


예전엔 소울푸드가 뭔지 몰랐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계란후라이였고, 뭐 먹고 싶어-하면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였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특정음식이 생겨버리니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사실 비싸서 자주는 못 먹는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날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회사에서 긴 야근을 하고 지친 목소리로 엄마와의 통화를 끊었을 때, 그 순간 받았던 엄마의 용돈 같다. 직장을 가진 후로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엄마 용돈. 오늘 같은 날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사 먹고 기운 차리라는 문자메시지도 같이 왔다. 나는 그 길로 나의 회덮밥을 먹으러 갔고 그때부터 그 음식은 내게 응원이 되었다.


내가 나에게 힘을 주고 싶은 날.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는 것은 그 이국의 거친 도시에서 살아내느라 지쳤던 어린 나에게, 할 수만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더 기운 낼 수 있으니.

그리하야 현재의 나는 언제 어디에 있건 마음과 몸이 지친 날엔 곧장 먹으러 갈 수 있다. 나의 소울푸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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