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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Nov 22. 2022

멋쟁이 개자식 나가신다 길을 길을 비켜라

나보다 뭉치가 낫다.

나이가 들어도 철없는 건 여전하다.

본가로 오고 난 이후부터 엄마는 출근하는 나에게 도시락을 싸준다. 밥심이 힘이라고 밥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뭐든 그냥 배고픔을 가시게 하면 되고, 그날 그날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지 뭘 그렇게 꼭 밥을 챙겨야 하는 걸까.

 아무튼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겠다며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것 때문에 먹기 싫은데도 억지로 먹기도 하고 속이 더부룩해 약을 먹는 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시락을 먹는 건 순전히 엄마를 위해서다. 아침부터 준비해준 건데 안 먹으면 속상할 테니까.  

 문제는 맛이 없다.

 우리 엄마는 음식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다. 엄마는 항상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어. 요즘에 태어났어야 사 먹기도 하고 남편을 부려먹기도 하지. 너네 아빠는 밥 못하고 음식 못해도 저렇게 잘 살잖아."

 하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 때문이다. 아빠와 나. 이 전에는 아빠와 나와 오빠 때문이었고. 밥이 중요한 건 알지만 엄마는 자기를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걸 다 알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겠다." 거나 "이제 도시락 싸지 마."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이 오로지 자식 하나 먹이겠다고 싼 도시락이 예쁠리는 더더욱 없다. 음식 하기 싫은 티는 도시락 모양새에서도 나온다. 뭔가 그냥 대충대충 싼 그런 느낌. 그래도 어렸을 때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며 모양에 엄청 신경을 썼는데 최근에는 그냥 대충대충 담는 느낌이든다. 엄마 말대로 보기에 좋지도 않고, 맛도 좋지 않은 도시락을 먹는 건 정말 배 채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자칭 타칭 멋쟁이다. 난 남들은 화려하다고 입지 못 하는 옷들을 입고,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옷들도 즐겨 입는다. 예를 들면 반짝반짝 거리는 은빛 치마라던가, 스팽글이 잔뜩 달려있는 니트라던가 이런 것들. 사실 그게 화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한 친구가

"너는 정말 멋쟁이야. 어떻게 저런 옷을 그렇게 잘 소화해?"라고 해서 알았다.

 내가 꽂힌 건 '멋쟁이'이기도 했지만 '저런 옷'이었다.


 얌전하고 조신한 내 친구들은 절대 입지 않을 그런 옷.

 출근 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지만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 용인되는 그런 옷.

 옷뿐만 아니라 나는 화장하는 것도 좋아해서 어느 날은 눈에, 어느 날은 입술에 포인트를 주었다. 그 때문일까? 친구들은 나를 옷 잘 입는 친구, 멋쟁이 친구라고 불러주었고 나도 인정했다. 하하하

 멋쟁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멋쟁이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멋 부리는 걸 좋아하니까. 이왕 멋 부릴 거라면 멋쟁이가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멋쟁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바로 엄마의 도시락 때문이다.

 차가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사고가 나서 공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요즘 나는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닌다. 버스 타고 걸어 다니는 통에 신발을 조금 더 편한 것으로 골라 신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괜찮은데 엄마가 자꾸 도시락을 싸준다. 엄마 비위를 맞춰주려고 조금 더 큰 가방을 골라 그 안에 도시락을 차곡차곡 넣어 다닌 지 이제 일주일. 차는 적어도 열흘 이상은 걸린다고 하는데 엄마의 도시락 사이즈는 점점 커진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내가 걱정이 돼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기 때문이다. 오늘 룩에 들고 싶은 가방이 있었는데 번번이 그놈의 도시락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가방을 드는 느낌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거기다 거실 한 복판에 쌓여있는 내 소중한 옷들. 그리고 집안을 가득 채운 기름 냄새.

 

 "아 안 가져가!" 결국 화를 내버렸다.

 "이게 도시락 가방이지 내 가방이야?" 성질을 내고 나오는데 엄마가 지퍼백을 가지고 와서 도시락을 담더니 다시 가방에 넣는다. 가방은 다시 커졌고 터질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도 집안을 가득 메운 기름 냄새 때문에 오늘 신경 써서 입은 옷에도 냄새가 배고 있었다. 머리에도, 신발에도. 내 짜증은 극에 달했고 그냥 나오려는데 엄마는 굳이 내 손에 가방을 쥐어준다.


 "왜 그래. 엄마가 아침부터 만들었는데."


 억지로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화가 났다가 속상했다가 슬펐다가 마음이 복잡했다. 이 나이 먹고도 엄마 속을 이렇게 썩이는 딸이라는 게 미안했고, 내가 화를 내는데도 같이 화 안 내고 참는 엄마를 보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가방을 보고 온 몸에 밴 냄새를 맡는 순간 또다시 대폭발!


아 진짜!! 엄마는 왜 옷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거야!

그런 음식 할 때는 옷을 옷방에 넣어두고 해야지!


난 정말 개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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