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은 문 닫지만 제가 찾아갑니다.
죄를 받은 것이다. 분명히.
아이들의 쉼터를 치우자마자 안 좋은 일들이 생겼다.
정확히는 더 이상 아이들 식당에 밥을 두지 않았고, 그러고 나서 나쁜 일이 연달아 생겼다.
여름이면 더울까 봐 겨울에는 추울까 봐 아이들 집을 만들어주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그렇게 오지랖을 부렸다.
집 없는 고양이들이 그렇게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비와 눈을 피할 수는 있을 테니까.
고양이들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일이 이거였다.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때 친한 동생이 그랬다.
'그래도 언니가 밥을 주고 챙겨주는 동안은 편안할 거잖아요.'
그 말에 힘을 얻었다.
그 말에, 밥을 주고 챙겨주는 일들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에 심취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두 생명이기는 하지만.
지난주에 건물주가 고양이 쉼터를 치워달라 이야기했다.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더 죄송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에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웠고
보닛에 들어온 흔적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죄송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막막했다.
'아.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생각은 없고 죄책감만 들었다.
'내가 버림받은 저 아이들을 또 버리는구나'
이걸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아이들의 쉼터는 나에게 오지 않을 때 지내던 곳에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밥은 그 근처에 매일 조금씩 가져다도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나 말고도 이 동네에 그 아이들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없어도 그 아이들은 이 동네에 소중한 주민인 것 같아서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아이들은 비를 피할 곳이 있었고, 더위를 피할 곳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고양이 식당은 이제 이동식으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