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빈 Oct 31. 2023

소설 <오직 두 사람>

둘, 그리고 관계에 대한 철학과 고찰

인생은 어쩌면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끝이 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우정의 관계그 보이지 않고 수많은 관계는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죽이기도 한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세 사람네 사람과는 다르게 매우 특별하다혼자서는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그렇다면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는 두 사람이다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다수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경우의 수 보다 적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각별해진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맺는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이 책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인간에게서 뗄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관계를 다룬다


현주의 삶은 종속변수 같은 삶이다수학적 개념에서 종속변수는 결코 인과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났다어려운 개념이지만 그냥 그렇게 이해하라고 했던 조언과 함께아빠의 삶으로부터만 그녀의 삶이 완성된다. 하지만이 관계를 과연 인과 관계로 규정 지을 수 있을까이 또한 그냥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삶에는 수많은 변수와 확률이 존재한다

확률에서는 독립사건이라는 개념이 있는데독립사건은 한 사건의 확률이 다른 사건의 발생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주와 다르게 현정의 삶은 독립사건처럼 보인다. (그녀의 대외적인 삶만이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다.) 현정의 삶은 아빠라는 다른 사건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오롯이 자신이 만들어 가는 삶이다그렇다면 현주의 삶 가운데서의 아빠는 그녀가 지고 가야 했던 짐 같은 책임감일까 아니면 이미 칡뿌리처럼 얽혀 해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존재였을까


어느 관계에서든 너무 지나친 사랑이나 지나친 무관심은 독이 된다서로의 대한 너무 큰 기대감은 갈등을 촉진시키는 독약이 되고는 한다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떤 관계든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다세 사람네 사람과 다르게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제외하면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갈등도화해도사랑도 결국은 두 사람의 몫이다한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고 철저히 다른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한다면 어쩌면 그 관계는 영원해질 수 도 있을지 모른다하지만 과연 그것이 건강한 관계 일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꽤 오래전부터 나는 세상에는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되었다라는 표현은 아마 어떤 경험에서 그렇게 느껴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인데사실 나도 그 시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아마도 복합적일 것이다.) 인간은 한 없이 영원한 것에 목말라한다. 그리고 그것을 환상처럼 여기고 동경한다영원한 사랑영원한 젊음영원한 관계.... 하지만 진리가 아닌 이상 영원한 것은 없다그러니 다소 대단한(?) 회의주의자처럼 보일 수 도 있지만어찌 되었든 관계에 대해서는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다자신의 내일 일도 당장 몰라서 알량한 타로나 점술에 의지하는 인간이 어찌 영원한 관계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다는 걸까세상은 모순 덩어리지만 사람 사이의 일은 모순이 아닌 것이 없다그렇다영원히 내 것인 사람도 없고 그것을 독점하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죽이려는 행위 일 지도 모른다

현주의 삶은 이미 죽어버린 달팽이 껍데기 같은 삶이었는지도 모른다그토록 자신의 인생을 바쳐 아빠에게 매여 살았던 현주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나서 담배를 피우며 실소를 한 마지막 단락에서는 바짝 말라서 손으로 만지면 바스라 져버리는 달팽이 껍데기가 연상되었다. 바닥까지 말라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민달팽이는 껍질이 없이도 비록 느리지만 원하는 방향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하지만 껍데기는 그렇지 않다민달팽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그녀의 민달팽이는 아마 유럽여행을 갔던 그 순간열아홉의 모습으로 유럽에 남겨져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흔히 기본적인 관계라고 이야기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부부의 관계우정의 관계 등을 떠올린다그리고 기본적일수록가까울수록 우리는 어쩌면 그 관계와 그 사람을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려 할 때가 많다하지만 관계는 결코 독단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나라는 A의 변수와 B라는 전혀 다른 변수가 만나 경우의 수를 수없이 가지 쳐 나가는 과정이 삶이 되는 것이다수학 공식에서는 두 변수를 수식으로 규정하고 정리할 수 있다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끊임없이 감정이 오간다믿음배려가끔은 포기 같은 것도 필요하다완벽하게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일종의 비결 같은 것이 된다아빠가 현주의 삶을 조금만 배려해 주었다면자신의 욕심을 조금만 포기할 줄도 알았다면현주는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현주의 모습에서 진한 연민과 아쉬움이 그득하게 묻어 나와 마음속에 울림으로 자리 잡았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딱 읽고 다시 제목을 보았다. ‘오직이라는 말이 조금은 무섭게 다가왔다그 어떤 다른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까오직이라는 단어가 두 사람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묶어버리는 것 같았다무심한 듯 간결한 김영하 작가의 문체와 씁쓸하게 느껴지는 현주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처럼 느껴졌다그 관계가 차가울 정도로 무심해 상호배타적으로 살아가는 변수들이든누군가의 종속과 희생으로 얼룩진 독단적인 관계이던지세상에는 결코 단순한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그것이 무슨 변수들인지는 비록 다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이전글 연극 <마우스피스>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