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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May 08. 2021

뮤지컬 <위키드> 리뷰

이토록 환상적인 세계의 이면에 대하여


드디어 초록 마녀가 다시 돌아왔다. 2016년 재연 후에 약 5년 만에 <위키드>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꽤나 들썩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울 공연을 마치고 부산 공연만을 남겨놓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 같은 경우에도 마니아 층이 확고한 뮤지컬이 있는 반면,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보러 가볼까? 하는 대중적인 극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키드>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도 티켓 팔리는 속도를 보아하니 코로나 시국에도 많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모두들 한 번쯤은 읽어 보았을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하는 대표적인 스핀오프 작품인 <위키드>는 친숙한 이야기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가져와 그 이면을 살피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며 익숙한 장치들을 이용해 신선한 재미를 꾀한다. 거기에 화려한 무대 장치와 소품, 의상, 미술 등은 러닝 타임 내내 온전히 오즈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어 준다.



마법이라는 초월적인 소재와 일종의 스핀오프라는 형식을 보았을 때 처음 생각난 작품은 <해리포터> 시리즈와 <신비한 동물사전>이었다. 하지만 같은 세계관만을 차용한다는 점과는 달리 위키드가 가지는 힘은 바로 캐릭터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입체적인 캐릭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단순히 선악으로 캐릭터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선역이나 악역에 부여되는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이 확고했던 이전의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이 다소 놀라웠다.




"우리는 그 시대의 가장 과학적으로 발달된 사람을 마녀라고 불러왔다는 증거가 있다."


<오즈의 마법사> 원작자는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녀라는 소재는 중세시대의 고전에서부터 시작되어 여러 이야기에서 상징적인 메타포로 자리 잡은 캐릭터 중에 하나다. 마녀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도 엘파바와 글린다가 등장하지만 착한 마녀 글린다는 마치 디즈니 공주와 같은 이미지인 반면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 엘파바는 매부리코에 지독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마녀로 그려진다. 사실 초록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더 고약해보기 이만 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위키드>는 바로 이 지점,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을 정공법으로 격파시킨다. ‘마녀’라는 이미지만큼 세계 만국에 공통적으로 깊이 인식되어 있는 캐릭터도 없지 않은가. 특히 서양권에서는 동양에서보다 그 이미지가 가지는 힘이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 또한 ‘마녀’라는 이미지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모두 서양 동화로부터 였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마녀는 타고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힌다는 이야기.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뻔한 것 같은 고정관념을 <위키드>는 철저하게 비틀어 버린다. 마법사에게 고통받는 동물들을 구해주고 그 비밀을 폭로하려는 선의의 편에 선 마녀라니?

 

설정부터 이미 신선하고 즐거운 트위스트를 예고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악의 편에 선적 없던 주인공 엘파바가 마녀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군중의 심리와 이미지가 주는 고정관념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쁜 마녀 엘파바와 착한 마녀 글린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두 주인공이 펼치는 이야기를, 두 가지 포인트를 통해 극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엘파바와 글린다의 버디무비

 



초록 피부에 머리부터 발 끝 가지 검정 옷을 입고 나오는 엘파바, 그와 대비되어 금발 머리에 화려하고 밝은 의상을 입고 나오는 글린다. 두 사람은 이미 외관에서부터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넘버부터 사람들은 ‘서쪽 마녀’의 죽음을 환호하고 버블 머신을 타고 내려오는 글린다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이 짧은 도입부만 보아도 선과 악이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은데, 글린다에게 “서쪽 마녀와 친구였지 않냐”는 누군가의 질문으로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과거로부터 흘러가 그 복잡한 사정을 말해준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사실 성격 측면에서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다.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엘파바는 세심한 내향형 사람이고 글린다는 쾌활한 외향형 사람이다. (‘뭉뚱그려서’ 말한다는 이유에는 누구나 그렇듯 이 두 사람의 성격을 하나로 규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키드>는 이러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엘파바와 글린다가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우정을 그리고 있는 다소 뻔한 이야기지만 이들의 캐릭터가 가지는 입체성이 차별점을 주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학교의 인기스타인 글린다와 모두가 피하는 초록 피부의 엘파바는 뜻하지 않은 해프닝으로 인해 룸메이트로 배정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서로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피에로가 전학 오면서 벌이게 되는 무도회를 계기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로서 점차 마주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결핍이 서로에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타고난 마법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엘파바는 내심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린다를 부러워하는 듯하다. 그런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둘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된다.


글린다는 자신의 전공(?)인 <popular>를 노래하며 엘파바에게 "너는 아름다워."라고 처음으로 말해주는 존재가 되고 엘파바는 마법사를 만나러 오즈에 가면서 글린다와 함께 가자며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엘파바가 모리블의 계략으로부터 말려 쫓기게 되자 헤어지게 되었다가 피에로를 놓고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이 진짜 친구가 되었다고 느끼는 지점은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피에로를 사랑했고 그를 지키기 위해 하나씩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결국 글린다와 엘파바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자신들의 우정을 마음에 묻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마법 학교에서 약간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던 글린다는 이제는 우정을 위해 포기하는 법도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엘파바는 역경을 통해서도 자신의 마법을 선을 위한 도구로 쓰는데 마음을 굳히는 모습을 보이며 한층 단단한 마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대외적으로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게 되지만, 글린다와 엘파바는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각자의 삶에서 정말 소중히 여겼던 친구였고, 그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록 극의 말미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지만 그럼에도 <위키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동반 성장'을 그린 버디무비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그들의 내면이 마치 거울처럼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가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두 여성 캐릭터의 우정과 성장을 다룬 이야기 중에 이렇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었는가, 하고 되돌아보면 <위키드>는 참 보석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녀’라는 고정관념에서부터 시작한 트위스트들이 결국은 ‘마녀’라는 캐릭터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로 성립된다. ‘마녀’라는 메타포가 가지는 신비롭고 독특한 설정들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이렇게 멋진 우정 이야기로 거듭났다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평범함과 비범함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남들과는 다른 초록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어릴 적부터 왕따로 살아왔지만 마법학교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마녀 엘파바는 과연 어떤 캐릭터 일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비범’한 인물이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 없이 보통이다’라는 뜻의 반대 의미인 ‘비범하다’는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어 단어로도 ordinary의 반대는 extraordinary 아닌가. 그녀에게는 단지 남들과 다른 ‘extra’의 무언가가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자연스럽게 소문이라는 게 생긴다. 소문 또한 하나의 내러티브다. 다만, 그 이야기가 구전되면 살이 붙으면 엉뚱한 곳으로 방향성이 튀는데, 이는 이야기를 가진 다른 매개체와는 차이점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과 재능을 타고 난 엘파바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늘 소문의 대상이 되곤 한다.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나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 뿐인데,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자주 혼용하곤 한다.  


그럼에도 엘파바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재능으로 모리블 학장에 눈에 띈 그녀는 처음에는 스타로서 이용되려다 그 뜻이 맞지 않자 바로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오즈에 갔을 때 모리블 학장의 지위가 ‘언론부 장관’이라는 지점은 꽤나 노골적인 메타포라 극을 보다 웃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사람들의 여론을 조성하는 모리블의 모습을 보면 꽤나 섬뜩한 지점이 많다. 모리블에게는 선과 악은 딱히 중요하지 않는 가치처럼 보인다. 엘파바를 '악'으로 몰아가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적'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이야기와 오즈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보기 때문에 그 세계관의 이면을 동시에 지켜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오즈의 시민들은 모리블의 말에 ‘마녀를 무찌르자!’ 라며 순식간에 여론이 조장되어버린다. 거기에다 엘파바가 뱀처럼 껍질이 벗겨진다는 둥, 물이 닿으면 녹는다는 등의 전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까지 얹어져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기괴한 마녀의 전설이 탄생한다.

 


이 모습을 통해 ‘언론’을 통해 발설된 하나의 소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을 통해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까지 뻗어가는지 보게 된다. 중세시대의 마녀 사냥의 유래를 떠올려 본다면 사실 그 시대의 상과 맞지 않은 ‘비범’한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판단과 배척의 잣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돌아보게 된다.



이는 사실 동화의 세계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잣대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다름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쥐고 있는가. 사실 남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그들은 평범함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 무언가를 특별함으로 대해 줄 수 있는가, 혹은 다름으로 배척할 것인가는 실은 우리의 몫이다.






극을 보고 나와서 어릴 적에 읽어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남아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컬러 영화의 시초를 열었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지금 시청해도 그 시절에 이런 영화를 찍는 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대단한 영상과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위키드>의 이야기를 알고 다시 보는 <오즈의 마법사>는 한층 오즈의 세계관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도로시의 ‘귀환’이라는 하나의 추구의 목적을 가지고 쭉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인 원작과 달리, <위키드>는 오즈의 세계의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서쪽 마녀 엘파바와 착한 마녀 글린다의 깊숙한 내면의 이야기를 두드리며 그 사이에서 진행되는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즈의 세계관의 캐릭터들을 하나둘씩 등장시킨다.


평범한 소녀 도로시의 시선에서 보이는 마법 같은 여정과 달리, 오즈의 세계에 원래 있었던 캐릭터들이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엘파바, 글린다, 사자, 깡통로봇 등이 되었는지 서사를 부여하며 그 이면의 더 깊은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진한 여운으로 자리한다. 아마 <위키드>의 결말은 세 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권선징악에 성공하였다는 기쁨에 도취한 오즈 민들의 해피엔딩, 그리고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라고 말하지만 사랑했던 연인과 친구를 잃은 슬픔을 꾹 삼키고 있는 글린다의 세드 앤딩. 그리고 이제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는 엘파바의 열린 결말을 상상하게 한다.



잘 만든 하나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리고 그 황홀한 세계가 구현된 무대위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선율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극이라니. 단언컨대 <위키드> 만큼 뮤지컬을 위한 이야기는 또 없으리라고 장담해 본다.


마법 같은 극 예술의 정점과 <Defying gravity>와 같은 친숙한 넘버,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스토리에 익숙한 메타포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위키드>가 하루빨리 다음 시즌으로 우리 곁에 또 찾아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비범하지만 친숙한 마녀들이 살고 있는 신비한 오즈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할 테니.








* CAST :  옥주현 / 정선아 / 서경수
*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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